[한국여성인물사전] 193. 손변(孫抃)의 아내

입력 2017-09-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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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혈통’이라 차별받은 고려왕의 서녀

고려 왕실의 구성원 중에 특이한 존재가 있다. 아버지가 국왕이더라도 어머니의 신분이 왕비가 되기에 부적합할 경우, 그 소생 자녀는 일반 왕자나 공주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대개 궁인(宮人)이나 기생 또는 향리(鄕吏)의 소생이었다. 그중 남자아이는 소군(小君)으로 불렸는데,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야 하는 슬픈 운명의 소지자들이었다.

‘고려사’(高麗史)는 소군에 대해 “나라의 제도에 궁인이 임금을 모시다가 아들을 낳게 되면, 곧 머리를 깎아 승려로 만들고 소군이라고 칭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그들이 승려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감히 왕위를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궁인 소생의 딸 역시 일반 공주와는 다른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고려의 공주들은 거의 100%에 가깝게 근친혼을 하였다. 즉, 공주들의 결혼 상대는 대개 왕실내(王室內)의 남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궁인의 몸을 빌려 태어난 왕의 딸들은 일반 관인(官人)의 자제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그녀와 혼인한 사람을 ‘나라의 사위’ 또는 ‘국왕의 사위’라는 의미로 ‘국서(國壻)’라고 불렀다.

고려 고종대(高宗代) 뛰어난 재판관으로 후대에 널리 알려진 손변(孫抃)이 바로 국서였다. 다시 말해 손변의 아내가 왕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머니 혈통이 좋지 않아 공주로 불릴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녀의 혈통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궁인의 소생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는데, 차별의 대상에는 국서도 포함되었다. 사실 손변은 혈통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귀족의 후손이었지만, 배우자의 혈통적 하자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고려에서 국서는 대성(臺省)과 정조(政曹) 등의 주요 관직에 임명될 수 없었다. 대성과 정조는 언론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노른자위 관부(官府)인데, 이곳에 임용될 수 없다는 사실은 관직자로서는 굉장한 불이익이다.

이에 자신이 남편의 출세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던 손변의 처는 어느 날 폭탄 선언을 하였다. “공이 나의 혈통이 천함으로 말미암아 유림(儒林)의 청요직(淸要職)을 밟지 못하니 감히 청컨대 나를 버리고 다시 세족(世族)에게 장가드소서”라며 이혼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손변의 아내는 임금의 딸이므로 혈통이 천하지 않은 존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고려에서는 부모 중 어느 한쪽의 혈통이 나쁘면 다른 한쪽이 아무리 고귀하다 해도 천한 사람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났다. 아내의 요구에 손변이 웃으며 “자신의 관직 생활을 위하여 30년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행위는 차마 하지 못할 짓인데 하물며 자식이 있는데”라며 거절했던 것이다. 그 후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전하는 기록이 없어 잘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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