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생기업 울리는 투기세력

입력 2017-06-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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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기업금융부 기자

면접용 정장을 얼마 전 중고사이트에 내놨다. 취업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뒀던 옷이다. 그간 나름대로 고심했다. 정말 앞으로 필요가 없을지, 가격은 어느 정도면 아쉽지 않을지, 시장가격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등 꼼꼼히 확인했다.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판매 글을 올리자 문자메시지로 질문이 쏟아졌다.

낡은 옷 한 벌을 사고팔 때도 각자 ‘전투’를 하는데, 기업을 매매하는 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새것 같은 헌것’도 아니고, 파산 직전에 법원 주도로 겨우 목숨만 건진 회생기업이라면 더하다. 매각 때 고려해야 할 변수는 늘어난다.

우선 법원 주도 회생기업의 경우는 일반 인수·합병(M&A)과 달리 매각 측 최대주주와 인수자의 의사만으로는 결론을 못 낸다. 회생법원이 회사 정상화 취지에 맞는 매각이 될 수 있도록 과정을 중재·주도한다. 받을 돈이 있는 채권단도 매각에 동의해야만 한다.

해당 기업이 상장사라면 법정관리를 거치며 수년간 주식거래의 발이 묶였던 주주들의 의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사주는 물론이고, 임금을 반납·동결하며 회사 정상화에 동참한 노동자들도 안고 가야 한다. 여기에 ‘휴지 조각’이 된 주식을 가지고 단기 차익거래를 하며 주가를 흔드는 악성 투자자들까지 기승을 부린다.

최근엔 이런 투자심리에 편승해 이득을 취하려는 인수 세력이 주식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매각 주관사를 통해 입찰 절차에 참여하지 않고, 갑자기 청와대와 법원에 민원성 서류를 내거나 온라인에 자기네 입장을 공표하는 식이라서 논란이 되고 있다.

중고거래에서 ‘찔러보기’는 흔하다. 이럴 때 날아오는 문자메시지 정도는 귀찮고 말 일이다. 그러나 M&A로 기업이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선 회생기업과 그 임직원을 상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알리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이 정착되기 위해서라도 ‘경쟁적 탈락’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정화 시스템을 갖출 유인(誘因)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존 주가조작 적발 방식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시장 환경에 맞춰 모니터링 테마를 바꾸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진화하는 투기세력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 법원 주도로 회생 딜에만 별도로 적용되는 입찰 참여의 진입장벽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투기세력이 회생기업을 인수할 경우 어렵게 살아난 기업은 또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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