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21. 노천명(盧天命)

입력 2017-05-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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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의 파고에 휩쓸린 고독의 시인

노천명(盧天命)은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고독의 시인’, ‘한국의 마리 로랑생’, ‘최초의 본격적인 여류 시인’으로 불리지만, 친일 행적과 한국전쟁 시기 부역한 이력, 시 세계가 큰 진폭 없이 내향적인 서정성으로 일관한 점 때문에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그러나 고독과 노스탤지어의 시 세계는, 예민하고 명민한 여성 시인을 불륜을 저지른 독신 여성으로 비하하며 조롱했던 당대의 편견, 조실부모한 외로움과 끔찍한 빈곤에 맞서 싸워야 했던 여성 시인의 내면적 고통이 투사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숭원의 연구에 의하면 노천명은 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난다. 홍역을 심하게 앓고 기사회생한 후 그 기쁨에 이름 기선(基善)을 천명(天命)으로 고쳐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보통학교 입학 후 부친의 죽음으로 서울로 이주하여 진명보통학교와 진명여고보, 이화여전 영문과를 거쳐 문학적 수련을 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온 상실감과 부친과 모친을 연이어 잃은 슬픔은 감수성을 점점 더 예민하게 만든다.

학창 시절 운동도 잘하고 시를 잘 쓰는 문학소녀로 이름을 날렸던 노천명은 이화여전 시절 변영로, 김상용의 지도를 받으며 ‘신동아’에 ‘포구의 밤’이란 시를 발표하고 교지 ‘이화’ 4호에 시조 ‘어머니의 무덤에서’를 발표하기도 한다. 졸업 후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활동하고 극예술연구회에도 참여해 1934년 안톤 체호프의 ‘앵화원(벚꽃동산)’을 공연하기도 한다. 공연 중 유부남인 보성전문학교 경제학 교수 김광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다. 윤리적 자의식이 강했던 노천명의 성격상 이 사랑은 오래갈 수 없었다. 이후 노천명은 평생 독신으로 산다.

노천명은 1935년 ‘시원(詩苑)’에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해 주목을 받게 되고, 그 여세로 1938년 첫 시집 ‘산호림’을 자비 출간한다. ‘여성’지의 편집기자로도 일하게 되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42년 2월 ‘조광’지에 실은 ‘기원’을 시발로 수편의 친일시와 산문을 쓴다. 해방 이후 이때의 행적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소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서울신문사와 부녀신문사에서 일한다.

한국전쟁기 미처 피란을 가지 못했던 노천명은 서울 수복 후 부역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2년 형을 받았으나 주변 문인들의 도움으로 6개월 만에 풀려난다. 이때의 체험은 그의 영혼과 육체에 큰 생채기를 내게 된다. 휴전 후 중앙방송국에 촉탁직으로 근무도 하고 ‘이화 70년사’ 편찬에 관여하던 중 1957년 재생불능성 빈혈로 쓰러진 후 6월 16일 자택에서 운명한다. 시집에 ‘창변’(1945), ‘별을 쳐다보며’(1953) 수필집에 ‘산딸기’(1950), ‘나의 생활백서’(1954), ‘여성서간문독본’(1955) 등이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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