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조선일보 사설엔 “1993년 10월의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과 비교해볼 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는 회상과 더불어 “세월호의 운항부터 구조(救助) 과정에 이르기까지 뭔가 말도 안 되는 실수와 과실들이 겹쳤을 것”이란 추론이 등장한다.
반면 한겨레는 “이번 참사는 불가항력의 재해가 아니다. (중략)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이나 생존자 증언 등에...
1993년 29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졌던 서해훼리호 사건에서 재판에 넘겨진 선박회사 직원과 공무원 등 7명에게는 전원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 또 2011년 과실로 선박을 전복시켜 4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을 다치게 한 한모 선장에게도 역시 집행유예형이 내려지면서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다.
한편 1등 항해사 강모(42)씨와...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1970년 남영호 침몰사고,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1976년 동해어선 27척 침몰사고, 1984년 한강 대홍수,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일어났던 참사들은 선진국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인재(人災)가 대부분이었다....
이어 지난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을 언급하며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 왔지만 계속해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이런 대참사가 또 발생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또 “이제 더 이상 사고 발생과 대책마련, 또 다른 사고발생과 대책마련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이야말로...
지난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건 때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아 안전 시계는 오히려 거꾸로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서해 훼리호 참사 담당 검사를 맡았던 김희수 변호사가 이번 참사를 보고 “정부의 대응이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나아진 게 없다”며 오히려 초기 구조작업이 서해 훼리호 때보다 뒷걸음쳤다고 지적했을까.
이번...
1993년 10월 전북 부안군 위도 해상에서 침몰된 서해훼리호 선장 백운두 씨는 사고 직후 행방이 묘연해 탈출설이 제기됐다. 백씨가 발견된 건 사고 8일 후 훼리호 선체가 인양되면서다.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탈출설, 도주설에 지명수배까지 당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 작업에 힘쓰다 숨진 것으로 정황이 드러나면서 누명을 벗게 됐다.
앞서 16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