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中企 여사장과 설렁탕

입력 2014-09-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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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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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진주도 아침 저녁은 진한 가을입니다.

중진공에 만 18년째 다닙니다. 18년이란 기간 동안 중소기업 정책자금 일선업무는 1년 반 했는데 그때 알게 된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녀는 공부는 곧잘 했지만 어린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여상 야간부에 진학하였습니다. 평생 한이 된 돈을 벌기 위해 졸업 후 대구에 조그만 섬유업체 경리로 취업하였습니다. 중소기업이 다 그렇듯이 인력이 부족한 기업의 경리인 그녀는 남자들도 어렵다는 거친 영업과 섬유기술까지 마스터하며 일등 일꾼이 되어갔습니다.

지금처럼 환율 변동이 심하던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때입니다. 착실하게 성장하던 회사가 환율 대응 부족으로 도산하여 종업원 모두가 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어디 간지 모르는 상황에서 채권단은 회사를 매각하는 것보다 계속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보고, 그 동안 눈여겨 본 그녀에게 좋은 조건에 인수를 제안하였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종업원들을 다독이고 채권단과 거래처를 뛰어다니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저희 중진공과도 인연이 되고 공장 구입과 운영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번듯한 자기 공장에서 나날이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여 여사장은 늘 웃음을 띠었고 저를 친오빠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제가 대구를 떠나 서울에 근무할 때 서울에 오면 꼭 들러서 설렁탕을 앞에 두고 회사 자랑을 신나게 하였습니다.

3년 전쯤 갑자기 듣게 된 돌아가셨다는 비보. 그때 저도 얼마나 망연자실하였는지 모릅니다. 회사 재건을 위해 일하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암으로 세상을 등진거지요. 자존심 강한 그녀는 힘든 투병 생활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몸 바쳐 일군 회사는 둘째 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들을 두고 그 욕심 많은 똑순이가 세상을 등질 때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때껏 만난 중소기업 경영자 중에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희로애락을 같이한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설렁탕을 볼 때면 그분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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