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누가 열정의 청년 연기자라 하지 않겠나? [배국남이 만난 스타]

입력 2014-04-11 12:18 수정 2014-04-1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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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 예능아닌 여행이라 생각하고 촬영…내달부터 연극 ‘사랑별곡’으로 관객과 만나

▲배우 이순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사랑별곡’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젊은 친구들이 돈 되는 연기만 하려고 해. 창조적인 연기, 기본에 충실한 연기를 해야 하는데. 가장 기본인 화술과 발성에 문제가 있어. 정확한 발음과 발성은 끝없이 훈련해야 해.”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진다. 열정 그 자체다.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순간이다. 연기와 그의 인생을 단 한순간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3일 연극 ‘사랑별곡’ 제작발표회가 열린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자, 이순재(78)다.

연기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말하는 이순재의 모습은 1998년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때도 그랬다. 그는 만나자마자 연기의 본질과 연기자의 자질에 대해 언급했다. “단어의 장단음을 놓고 치열한 논쟁도 벌이고 고민도 했어. 1년 안에 뜬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최소한 3~4년의 잠복기를 거쳐야 눈에 보일까 말까 했는데 그런 배우가 결국 롱런하게 됐다. 고두심이나 김영애가 나이 들수록 연기가 나아지고 굳건해지는 이유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연기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래서 젊은 톱스타를 능가하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다. 연기자에게 가장 힘들다는 연극에서부터 중장년층 연예인의 사각지대인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해 전 세대의 사랑을 받는 ‘국민 할배’가 됐다.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꽃할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tvN ‘꽃보다 할배’) 나들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예능이라고 생각 안 해. 여행한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제작진이 힘들 거야. 솔직한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호감을 사는 것 같아. 나영석 PD나 이서진이 많이 고생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 예능 프로그램에 우리 같은 노인을 써 주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새로운 시도를 해 시청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제작진의 공이지. 앞으로 이런 시도를 많이 했으면 해.”

드라마와 영화 출연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까지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물리적·육체적으로 힘들 텐데 이순재는 연극 무대를 통해 관객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5월 2일부터 8월 3일까지 상연하는 연극 ‘사랑별곡’에서 후배 연기자 고두심과 부부로 출연한다. “힘들어도 해야지. 연극은 나에게는 고향 같아. 연극은 돈 되는 연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연기를 시도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 끊임없이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새로운 연기에 도전해 자기 발전을 관객들 앞에서 확인할 수 있어 힘들어도 좋아.”

“오늘 피가 줄줄 흐르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공연을 마치신 이순재 선생님. 아직까지도 심장이 덜덜 떨린다. 커튼콜 뒤 선생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내 심장에 영원히 머물 것 같다.” 연극배우 정선아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연극 ‘아버지’ 상연 도중 세트에 부딪혀 이순재는 많은 피를 흘렸고 정선아 등 연기자들은 연극을 중단하고 흐르는 피를 닦아 주려 했지만 연극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을 방해해선 안 된다며 피를 흘리며 연극을 끝까지 마쳤다. 이순재의 연극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순재를 만나면 꼭 손을 잡아 준다. 두 번 놀란다. 하나는 손의 따스함에 놀라고 또 하나는 손의 힘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연기에 대한 열정과 치열함 그리고 연기자로서의 자기관리와 노력을 손을 잡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78세라는 물리적 나이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뜨거운 열정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최고의 연기자로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본래 의미를 상실한 채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거나 나이 든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상투적 표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 표현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가 바로 이순재다.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 단순한 외형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하는 일에 치열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열정은 78세라는 물리적 시간들을 무력화시키고 삶은 시간의 장단의 문제가 아니라 치열함의 문제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열정으로 나이를 잠식시키며 TV 화면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무대에서 천의 얼굴을 연출하고 있다. 그 천의 얼굴은 TV 시청자에게, 영화와 연극의 관객에게 삶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있다. 이순재의 변화무쌍한 연기와 캐릭터로 인해 우리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는 감정의 문양을 느끼며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받는다.

“그냥 하는 거야. 나를 보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시청자와 관객이 있는 한 창조적 연기로 그리고 늘 자기혁신을 꾀하는 연기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지. 영화든 연극든 텔레비전 드라마든 상관없어. 연기로 진정성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면 말이야.”

서울고등학교 시절 연극의 맛을 본 이후 대학 연극반(서울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순재는 1962년 KBS 개국기념 작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극세계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50여년의 치열한 연기 인생에서 최장수 일일 연속극 출연(3년간 방송된 ‘보통사람들’), 최초의 일일 연속극 출연(‘눈이 내리는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일일 연속극( ‘보고 또 보고’),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사극 출연( ‘허준’) 등 자랑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이 기록들은 이순재라는 거목의 연기자가 자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랑이 뭐길래’의 가부장적 권위의 대발이 아버지에서, ‘허준’의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명의 유의태를 거쳐, 실수투성이의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 ‘엄마가 뿔났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노년의 순수한 사랑을 하는 노인, ‘마의’에선 인술을 펴는 어의, ‘꽃할배 수사대’의 베테랑 형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그리고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나 연기력에 대한 시청자와 전문가의 찬사가 잇따랐다. 이순재는 ‘최고의 연기자’, ‘어떤 배역이라도 진정성 있게 연기하는 훌륭한 연기자’, ‘이순재의 연기혼이 닿으면 캐릭터가 생명을 얻는다’ 등 그 어떤 연기자도 얻지 못한 수식의 헌사를 받고 있다. “과찬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내 연기를 보고 즐겁고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이 연기자 이순재의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런 그에게 ‘상도’에서부터 ‘마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함께한 이병훈 PD의 말을 빌려 질문을 던졌다. 왜 항상 녹화현장에 가장 먼저 나오느냐고. “늘 작품마다 만나는 캐릭터가 달라. 그 캐릭터에 몰입하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해. 그래서 촬영장에 빨리 가야 해”라고 답한 이순재는 이날 역시 연극제작발표회에도 제일 먼저 도착해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이순재다. “지금이야 인식이 크게 좋아졌지만 내가 배우를 시작할 때 배우는 천대받는 직업이었어. 물론 지금도 이런 시각이 존재하지만 그때는 매우 심했지. 우리 직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나 역시 욕구를 가진 인간이지만 나름대로 절제와 도덕성을 지키려고 한 거지.”

78세 배우 이순재는 말한다. “대사 암기력에 문제가 생겨 NG를 반복적으로 내 다른 연기자에게 피해를 줄 때가 은퇴할 시기”라고. 우리는 안다. 죽음이 그의 연기 열정을 단절시키지 않는 한 이순재는 최고의 연기자로서 여전한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인터뷰를 끝내자 내미는 이순재의 손에서 온기와 힘이 다시 느껴진다. 그 열정은 이순재가 또 다른 작품에서 보여 줄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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