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 최종 목적지는 ‘공교육 정상화’

입력 2014-02-27 10:35 수정 2014-02-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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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통과 법안 9월 시행

선행학습 금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르면 오는 9월부터 초ㆍ중ㆍ고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공교육 정상화 촉진ㆍ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 시행되는 길이 열렸다.

특별법은 비정상적 사교육 횡행으로 공교육이 무너지고 서민?중산층의 가계 경제가 악화하는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초ㆍ중ㆍ고교 및 대학의 정규교육 과정과 ‘방과 후 학교’ 과정에서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평가 등의 행위를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학원ㆍ교습소 등 사교육 기관은 선행교육을 광고ㆍ선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담았다. 각급 학교장에게는 선행교육을 지도ㆍ감독하고 선행학습 예방 교육도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 같은 특별법이 올 가을부터 당장 시행된다고 해도 실효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 법은 학원에서 선행교육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광고’만 하지 못하 게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원가에서조차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학원장 A씨는 “광고, 선전을 금지할 뿐 선행학습 자체를 학원에서 하는 것에 대해 막는 것이 아니라서 선행학습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며 “사실 동네 보습학원 등 비교적 수가 많은 학원은 광고보다 입소문을 통해 학생들이 몰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특별법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원 관계자 B씨는 “교과과정에 선행하는 내용을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선행학습을 안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선행학습이나 심화학습을 통해 출제되는 문제 수준보다 어려운 수준을 학습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특별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서울 대치동의 논술학원 강사 C씨도 “(이번 법은) 아직까지 학생들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 같다”며 “부모들이 자식을 교육시키려고 하는 열망을 법으로 막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본지는 교육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특별법을 진단해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돼야 할지에 대해 짚어봤다.

◇ 취지는 대체로 긍정적 = 선행학습 금지법에 대한 취지는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이 법은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보다 엄밀히 말하면 선행학습 유발 요인을 금지하는 법이라고 보는 게 맞다”며 “법안 내용이 학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학원에서 이뤄지는 선행교습을 금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봤다.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고 현실적으로 일일이 찾아다니며 진도를 확인하며 단속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을 규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육평론가는 “이 법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대학을 규제한다는 점”이라며 “대학이 논술이나 구술면접에서 교과과정 외 문제를 내는 것을 막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은 이번 법안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학습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면서 “다만 공교육 수업과 평가 그리고 입시제도 측면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을 규제하자는 의미에서 이번 법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이라는 절대적 과제의 선행 필수조건이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특별법을 지켜야 하는 일선 학교에서도 취지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대영 서초고등학교장은 “선행학습을 금지해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는 좋다”고 밝혔다.

◇ 특별법 맹점은 사교육 부담 키울 수도 = 이번 특별법은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비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자칫 사교육에 더 치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목고?자사고와 일반고의 교육과정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목고ㆍ자사고는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이다. 즉, 이들 학교는 교과과정의 150% 내에서 선행학습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행학습 금지법에 제한받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곧 일반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은 자연스레 학습 진도 면에서 특목고 재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결국 일반고 학생들은 사교육 기관인 각종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박재원 소장은 “특목고 등은 이런 권한을 악용해 입시 위주의 국ㆍ영ㆍ수 수업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 결과 선행학습이 가능하다고 볼 수는 있다”며 “하지만 특목고ㆍ자사고를 준비하는 중학생이나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과 입시에서 경쟁해야 하는 일반고 학생들이 반드시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목고가 일반고에 비해 진도가 빠를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일반고 수업과 평가, 입시제도로 인해 유발되는 선행학습의 필요성 그리고 그에 따른 사교육 욕구를 해소시키는 효과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대영 교장은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에 대해 대학입시를 꼽았다. 그는 “근본적 문제는 대학입시”라며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 치중하고 남들보다 경쟁에서 앞서야 하다 보니 학생들이 학원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이어 “학생들이 왜 학원을 가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며 “예컨대 수학의 경우,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학생이 학원에 가면 이해를 한다. 학교에서 잘 가르치면 공교육을 강화함과 동시에 사교육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취지 살려 공교육 정상화에 힘써야 = 선행학습 금지법은 취지를 살려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법안이 시행되고 개선되다 보면 공교육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재원 소장은 “자사고와 특목고 등에만 허용된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역기능화돼 또 다른 측면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선행학습의 필요성을 압박하게 만들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학교를 믿지 못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끊어야 하고 끊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이는 곧 공교육 정상화와 신뢰 회복의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법률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관심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특별법에 대해 정책기조의 변화라고 평했다. 그는 “대학에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한 기존의 정책기조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기조로 변화한 것”이라며 “당장은 효과가 미미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학생 선발에 대한 기조의 변화가 사교육의 선행교습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선행학습을 억지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대영 교장은 “선행학습을 하고자 하는 학생을 억지로 막을 필요는 없다”며 “영재는 영재교육을 하듯 같은 학습 진도를 나가도 다 이해한 학생이나 그 영역을 뛰어넘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공교육 강화와 학생 및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일선 학교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는 성취평가제의 정착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정화 홍익대 교육학과 초빙교수는 “장기적으로 이 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성취평가제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단위학교 자체 내에서도 평가 활동이 정상적 교육과정 운영에 초점을 두고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교수는 이어 “학습부진 학생이라든지 기초가 미흡한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활동이 강화돼야 한다. 또 대학에서의 학생선발 체제도 인성교육, 전인교육 중심으로 구축돼야 한다. 즉, 인성ㆍ전인교육 중심 교육 운용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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