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의 너섬만필] 현대판 심의(心醫)와 원격의료

입력 2013-12-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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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단종을 내치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잦은 병치레로 고생한 왕 가운데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워낙 병에 시달린 탓인지 의학에 대한 관심도 많아 재위 9년 되던 1463년 ‘의약론’을 반포하기도 했다.

세조는 여기서 여덟 가지 유형의 의원을 논했는데, 의원 중 으뜸으로 심의(心醫)를 꼽았다. 음식을 중히 여긴 식의(食醫)가 둘째요, 약을 잘 쓰는 약의(藥醫)는 그 다음이었다. 당시 중국은 주나라 이래로 식의를 가장 높게 쳤다. 조선이 중국의 영향권 하에 있던 점을 고려할 때 파격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세조가 심의를 중히 여긴 까닭은 환자를 대하는 의원의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병마에 시달리며 평소 의원과 대면할 기회가 많았던 그는 환자의 아픔을 보듬고 기운까지 편안하게 만들어 병증을 치료하는 의원에게서 심리적 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세조가 오랜 투병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심의 우선주의’로 나타난 셈이다.

조선 숙종 때 최고 명의 백광현도 심의로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조선 후기 문인 정내교가 정리한 ‘백태의전(白太醫傳)’에 따르면 ‘그는 환자의 친소·빈부를 구분치 않고, 부르면 왕진을 했으며, 마음을 다해 고쳤다’고 전해진다. 심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심의는 환자의 병증만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다스렸기에 명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심의가 환자의 마음마저 볼 수 있었던 데는 만남이 있었다. 의사가 환자를 마주하지 않고서는 병증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오랜 투병으로 쇠약해진 환자의 마음조차 섬세하게 다독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사와 환자의 대면은 의료행위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인 셈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 의사와 환자 간 대면진료 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첨단 IT기기를 활용한 원격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 중이고,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일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도입 관련 의료법 개정 수정안’을 내놨다. 수정안은 경증진료 환자만을 대상으로 진료하고, 원격진료만 전문적으로 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처벌을 명문화 하는 등 보완책을 담고 있다.

하지만 논란은 더욱 불거지는 양상이다. 경증이든 중증이든, 의사가 환자를 대면 진료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의료 현장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도서지역에서의 원격진료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약 처방에 따른 불편이나 인터넷 구매 등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논란이다.

의료현장 일각에서는 원격진료에 따른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테면 대면진료였다면 불가한 음주진료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사가 지켜야 할 도덕률을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남겼다. 그 중에는 ‘나는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는 구절이 있다. 원격의료의 부작용을 의사의 양심과 품위에만 떠넘기려는 발상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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