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온화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다. 20개 공공기관장을 만나 방만경영과 안이한 태도를 질책하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랬다. 사안에 대해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동시에 반드시 뜯어고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작심하고 꺼내든 현 부총리의 ‘매스’는 매서웠다. 14일 서울 은행회관으로 20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소환해 질책하는 부총리의 모습은 거친 단어를 최대한 피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평소와 180도 달랐다. 이날 간담회에는 시종일관 찬바람이 불었다는 후문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의 관리책임이 있지만 현 부총리는 물론 전임자 가운데서도 이처럼 공공기관장을 불러모아 질책하는 상황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매우 드물다. 공공기관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뒤집어서 정부에 대한 화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기관장 대부분이 고위공무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같은 공공부문끼리’라는 보이지 않는 동류의식도 어느 정도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뜯어 고쳐야 한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현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과도한 복리후생, 재정건전성 등을 열거하며 날을 세웠다. 그는 “언론은 공공기관을 방만경영, 비리 등과 동의어로 취급한다”거나 “상황이 이런데도 공공기관이 사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해 국민 불신과 각계의 공분을 사는 지경”이라며 군기를 바짝 잡았다.
현 부총리가 이처럼 호통을 친 것은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이 도를 넘어선 데다 잇따른 지적에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에 앞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공기관의 방만경영과 예산낭비를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비서관들을 향해 한 말이지만 대통령이 공공기관 관리의 책임자인 현 부총리에게 공개적으로 임무를 부여한 셈이다. 이날 현 부총리는 기관장들을 향해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인식이 과거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자신의 의지를 강조했다.
앞으로 공공기관에 몰아칠 강도 높은 칼바람은 “파티는 끝났다”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현 부총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렇게 선명하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평소에 부드럽던 분이 화를 내니 더 무섭다”며 “공공기관에 몸담아 오면서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정부에) 혼이 나 본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정말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