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시간을 꼭꼭 씹어 삼키며 만든 앨범” [스타인터뷰]

입력 2013-10-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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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공백 깨고 정규 6집 ‘꽃은 말이 없다’ 발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2년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속이 꽉 찬 열매를 손에 쥐었다. 가수 루시드폴(38‧본명 조윤석)은 지난 23일 정규 6집 앨범 ‘꽃은 말이 없다’를 발매하고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사진제공=안테나뮤직

이번 앨범은 더없이 관조적이다. 그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만 변화를 놓치지 않았고,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을 꿀꺽꿀꺽 삼키는 경우도 있고 시간을 꼭꼭 씹어 삼키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지난해부터 시간을 꼭꼭 씹듯이 보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죠.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제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보이고 들렸어요. 그런 점이 노래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네요.”

시간을 꼭꼭 씹기 위해 루시드폴은 생활 습관을 바꿔봤다. 의외로 상당히 급한 성격인 그는 스스로 느려지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그 시간을 남들보다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2년 전의 제 모습과 비교하면 굉장히 느긋해졌어요. 그게 앨범을 녹음할 때도 적용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노래 한 곡을 빨리 잘 불러서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번에는 녹음하고 들어보고, 그리고 생각하고 다시 부르고, 이런 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렇게 해도 작업이 늦어지지 않더라고요. 실제 이상의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죠. 곡의 소재도 소재지만 일상의 습관이나 삶의 속도에 관한 변화가 앨범에 들어갔겠구나 싶어요.”

▲사진제공=안테나뮤직

더블 타이틀곡인 ‘검은개’와 ‘햇살은 따뜻해’를 비롯해 수록곡 어느 하나 허투루 들을 만한 것이 없다. 특히 수록곡 ‘연두’는 ‘연두색 꽃처럼 살고 싶다’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잎사귀와 같은 색으로 피고 지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이 곡은 ‘특별하기’를 원하는 현실 속에서 ‘조화’를 노래한다.

“어른들은 항상 자식들이 특별한 존재이길 원하시잖아요. 물론 그 분들에겐 특별한 존재겠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란 얘기를 하지 않아요. 사람과의 조화 뿐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도 고려되지 않죠. 그런 마인드가 싫었어요. 연두색 꽃은 멀리서 보면 풀이나 잎사귀와 구별되지 않겠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만의 특징이 보일 거에요. 그렇게 조화롭게, 지혜롭게 살아가란 메시지를 담았어요. 훗날 제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럼 넌 자연스럽게 빛이 날거라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곡 제목은 물론 가사까지 단 하나의 영어 단어도 들어가지 않은 앨범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더 반갑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영어 가사를 문법에 맞게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걸 우리말만큼 잘 쓸 자신은 없어요. 우리말을 더 깊게 표현하는 데도 벅차거든요. 제게 영어 가사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사진제공=안테나뮤직

어느 때보다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이다. 몇 번이고 수정과 재작업을 반복한 수록곡은 물론 앨범 재킷의 종이를 고르는 것까지 일일이 마음을 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하게, 스마트폰에 번들 이어폰을 꽂아서 스트리밍으로 그의 음악을 접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혹시 이렇게 들인 공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없을까.

“음악을 하고 소리를 만들어내는 입장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공들인 음반을 번들 이어폰으로 듣는 것과 번들 이어폰으로 들으니 대충 만드는 것의 차이는 분명 존재할 거에요. 저 역시 마지막에는 아이폰으로 모니터를 해요. 정말 잘 녹음된 음반은 어떻게 들어도 좋기 마련이죠. 고급 오디오로 들어도, 아이팟으로 들어도, 정수(精髓)가 들려요. 저도 최대한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요.”

한 리스너는 그의 음악을 듣고 이런 댓글을 남겼다. ‘돈 몇 천 원에 이렇게 좋은 음악을 무한히 듣는다는 것은 황송한 일’이라고.

“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오래오래 아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깊게 사랑받고 싶어요. 서로 고마운 존재인 것 같아요. 그렇게 같이 음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뮤지션과 팬의 관계가 아닐까요? 저희 누나가 조용필 선배의 오랜 팬이에요. 19집 앨범이 나왔을 때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팬이란 사실이 창피하지 않게 공연을 해줘서 고맙고 다시 음반을 내줘서 고맙고 멋있게 음악만 해서 고맙다고. 그러면서 제게 ‘너도 그렇게 음악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저 역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루시드폴의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과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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