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옐런과 애컬로프

입력 2013-10-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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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재킷과 슬랙스, 낡은 조깅화 차림을 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큰 가방에서 두툼한 자료 꾸러미를 꺼내 열심히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눈을 뜬 할머니는 갑자기 아이패드를 꺼냈다. 무언가를 읽는 줄 알았는데 게임 삼매경이었다.”

지난 여름 와이오밍주 잭슨홀행 비행기에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의장 내정자의 옆 자리에 앉았던 한 미국인의 말이다. 그는 “세계 경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리에 앉을 사람치곤 너무나 서민적이어서 신기했다”고 했다.

실제로 차기 연준 의장에 지명되던 지난 9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 곁에 선 옐런 내정자의 모습은 작은 키와 백발만으로도 평범한 옆집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이 연준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라니! 최초의 여성 의장이자 부의장에서 의장으로 승진하는 첫 케이스로서말이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성공은 이미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옐런 내정자의 성공이 특별한 것은 남편의 헌신적인 외조 때문이다. 그의 남편이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의 대가 조지 애컬로프 캘리포니아대 교수여서 더 그렇다.

옐런 내정자는 1946년 노동자들이 몰려 살던 뉴욕시 브루클린 지구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맞벌이로 늘 바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옐런은 ‘이론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한 석학 제임스 토빈의 수제자로서 부와 명예에 대한 유혹이 끊임없었지만 그에게는 교직과 공직 사이를 오간 것이 경력의 전부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강의를 하다가 정부의 부름이 있을 때면 강의를 중단하고 달려갔다가 임기가 끝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전부였던 것. 부와 명예를 위해 끊임없이 회전문을 드나드는 인사들과는 명백하게 차별화된 삶이었다. 그동안 옐런 내정자는 연준 이사와 클린턴 정권의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이처럼 요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인 애컬로프 교수의 아낌없는 지지 덕분이었다. 애컬로프 역시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 활동 등에 여념이 없었으나 아내가 정부의 요직을 맡을 때마다 거처를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으로, 또 캘리포니아로 옮겨 다니며 아내 곁을 지켰다.

심지어 그는 2001년 노벨상 수상 당시 소감문에 “우리는 성격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에 대한 생각도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적으며 아내와의 남다른 교감을 자랑했다.

또한 두 사람은 실업의 원인을 분석하고 높은 임금이 노사 양방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논문 등을 발표하는 등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공동으로 펴냈다.

연준의 식당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이후 30여년간 같은 강단에 서 온 애컬로프와 옐런. 여전히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남편의 외조가 유난히 빛을 발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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