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금융산업에서 가장 험난한 외길을 걷고 있는 업종으로 단연 저축은행을 꼽을 수 있다. 업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저축은행들은 지금 모두 문을 닫았다. 신수종 사업이 없다 보니 부실이 하나만 생겨도 언제 또 저축은행 몇 곳이 간판을 내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뚜겅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어두운 터널 속에서 밝은 기운이 맴돌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저축은행중앙회, 금융연구원 등 5개 기관이 지난 5월부터 약 두 달간 ‘저축은행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온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저축은행의 붕괴된 수익 기반을 마련해 경영정상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주된 목표다.
◇대부업체, 저축은행 인수 허용 = 금융감독당국은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 길을 터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대부업체는 명실상부한 제도권 금융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당국이 대부업계의 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함에 따라 그동안 약탈적 고금리로 인한 서민 피해 등으로 악화된 대부업 이미지를 의식해 불허해 왔던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의 빗장을 열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부업체에 저축은행 인수를 최종 허용하되, 기존 대부업을 접거나 규모를 줄이는 등 신규 인수한 저축은행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간에 금리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동일한 대주주가 두 업권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저축은행을 인수한 대부업체는 기존 대부업을 완전히 중단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등 내부 방침을 당국에 제출하면 저축은행 인수 인허가를 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은 사실상 축소되고 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상품으로 수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감독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대부업체 자본금 규모, 대주주 신인도, 대출금리 인하 의지 등이 저축은행 인수 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예정이다. 대부업체 가운데 대형 5개사 정도만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자본금 등 기준을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저축은행의 방카슈랑스와 펀드 판매가 허용될 전망이다. 사실 방카슈랑스펀드 판매 허용은 오랫동안 저축은행 업계의 숙원이었다. 예금대출 업무 이외 영역을 확장해 수수료 수입 등 비이자수익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사 직전의 저축은행 업계가 제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대규모 부실을 불러온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신 새로운 먹을거리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
앞서 정부는 상호저축은행법을 개정해 저축은행이 할부금융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저축은행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여신건전성 분류 기준 등을 저축은행업의 특성에 맞춰 조정하기로 했다. 지역 밀착형 영업을 강화하고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 판매를 늘리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91개 저축은행 손실 줄었지만 ‘50개사 적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끝으로 그간 저축은행 업계를 먹여 살리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영업이 신기루로 드러나면서 저축은행들은 새 수익원을 찾지 못했다.
지난 2012회계연도(2012년7월~2013년6월)의 8803억원 적자는 저축은행 업계가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91개 저축은행 중 적자 저축은행 수는 50개사로 직전 회계연도(49개사) 대비 1개사가 증가하는 등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저축은행들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2012회계연도 중 저축은행의 당기순손실은 8803억원으로 2011회계연도(1조7000억원)보다 적자폭이 7804억원이나 줄었다. 이는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대손충당금이 3557억원 줄고 기타 영업손실도 1850억원 적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이 늘어나면서 6월 말 기준 총여신 연체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2%포인트 오른 21.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20.8%로 0.6%포인트 내려갔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10.82%로 3.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총자산은 43조9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50조6000억원) 대비 6조7000억원(13.2%) 줄었다.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과 부동산 경기침체 등 영업환경 악화 때문에 대출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자본잠식 업체가 구조조정되고 일부 저축은행이 유상증자를 하면서 저축은행들의 자기자본은 지난해보다 5000억원(15.8%) 늘어난 3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1년 구조조정 이전부터 영업해 온 76개 저축은행은 당기순손실이 6194억원으로, 전 회계연도보다 981억원 확대됐고 연체율도 22.0%로 전년 동기 대비 5.8%포인트 상승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기순손실이 줄어드는 등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영업환경이 나빠 자산건전성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영업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금융위원회와 함께 꾸린 저축은행 발전 방안 협의체를 통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