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성] 웹툰·게임 규제로 성범죄 근절? 빈대 잡자고 초가 태우나

입력 2013-08-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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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성보호법’ 무분별한 콘텐츠 규제 “표현 자유 침해”… “대책은 부실·억누르기만 급급” 비난도

▲지난 6월 21일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8차 국가정책조종회의에서 심의·의결한 성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왜곡된 성의식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성 담론을 금기시하고 숨기려 드는 문화로부터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화와 함께 우리나라는 타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성문화가 개방되는 추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같은 간극으로 인한 억제 일변도의 정책은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전제하고 있는 인과관계에 비판이 제기됐다.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기보다 게임과 웹툰 등 젊은 세대가 주로 접하는 콘텐츠를 대상으로 규제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국민의 안전을 강조했으며, 4대악(학교폭력·성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피해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성폭력은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5월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국민안전 종합대책’에서 성폭력의 미검률을 지난해 15.5%에서 2017년 9.1%까지 낮추고, 재범률도 지난해 7.9%에서 2017년 6.1%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범죄자의 검거율을 강도·살인 수준으로 높이고 16세 미만 대상 강간범은 집행유예를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성범죄 처벌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및 청소년들의 성의식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해물 차단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규제 일변도 정책이 예술 창작자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청법은 아동 및 청소년의 성적 피해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하지만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까지 대상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아청법은 시행 때부터 우려가 있었다. 이런 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화가 등 예술 창작자들에게 상당한 위축효과를 가져온다”며 “사안에 따라서 구체적인 타당성을 고려해도 형사 처벌의 강도가 세다.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침해할 여지도 크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셀카’ 촬영자 역시 음란물 제작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수사 실무자들은 청소년이 스스로를 대상으로 음란물을 제작한 셀카의 경우 처벌할 수 있는가를 놓고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아동을 학대해 음란물 촬영을 강요한 제작자와 셀카를 찍은 여성, 청소년을 동일선상에 놓고 처벌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변민선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아청법은 과잉처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그는 “아청법으로 기소된 자는 국가시험에 응시할 수 없음은 물론 10년간 아동·청소년 교육기관이나 청소년 활동시설, 의료기관 등에 취업도 할 수 없고 20년간 신상정보를 등록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3일 전국여성연대와 통합진보당 여성위원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창중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여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오히려 지난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으로 대망신을 샀다. 아청법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이 사태와 관련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이 부실했던 점도 비난받았다.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 당시 공무원들이 1년에 1번 1시간씩 실시하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제외하고는 따로 성추행, 성폭행, 성매매 등 성폭력 관련 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판은 더욱 커졌다. 정부는 6월부터 6만7000여 공공기관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화했으며, 고위 공무원 승진 교육 때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규제에만 매달리면서 청소년 성교육 등 근본적인 예방대책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지난 1일 질병관리본부의 전국청소년건강행태 조사 결과 서울 지역 청소년 476명 중 남자 48.3%, 여자 42.1%만이 성관계 시 피임을 한다고 응답했다. 성관계 시 피임을 했다는 청소년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최근 1년 이내에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서울 지역 중고생은 68.6%에 그쳤고 처음 성관계를 경험한 평균 나이는 13.6세로 조사됐다. 성관계를 경험하는 연령대는 낮아지는데 반해 정부의 대책은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한편 성폭력 사건의 사후 관리와 모니터링도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일어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나 공무원이 연루된 사건이 터지면 이를 정확히 조사해 바로잡기보다는 오히려 숨기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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