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그 때 무슨일 있었나… 되짚어본 당시 상황은 ③

입력 2013-07-21 16:24 수정 2013-07-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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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여성연대, 통합진보당 여성위원회를 비롯한 여성관련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윤창중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 촉구 여성공동고발인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 지난 5월 ‘윤창중’이라는 이름 석자로 온 나라가 들썩인지 두 달여가 넘었다. 정부 측 방미 인사로서 개인의 추문을 넘는 파장을 불러왔고, 이후 정부와의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강조해왔던 국격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상실감까지 맛봐야 했다.

이 글은 청와대의 발표와 지금까지의 언론보도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논픽션(Non-Fiction)’이다. 단, 아직 공식적인 수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내용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숨은 저격수 ‘76-19.98’가 밝히는 진실들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국민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윤창중 대변인의 이름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장 윤창중 대변인을 미국으로 보내 수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이 와중에 피해 인턴 사원 A씨와 함께 성추행 신고를 한 문화원 직원 B씨가 사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한 번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건의 당사자도 아닌 B씨가 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직후 문화원을 그만 둔 겁니까?”

이대로 묻힐 것만 같던 진실은 의외로 쉽게 드러났다. 12일 밤 미시USA에 ‘76-19.98’라는 아이디로 B씨가 사직한 이유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성추행을 당한 인턴이 울고 있는 모습을 문화원 여직원이 발견하고 사건 정황을 최초 인지했으며, 관련 내용을 담당 서기관과 문화원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화가 난 문화원 여직원이 피해여성 인턴과 함께 워싱턴 경찰에 신고한 겁니다.’

인턴이 호텔 바에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한 뒤 바로 보고를 했지만 묵살당했고, 두 번째 성추행 사실도 보고했지만 이를 무마하려고 해 신고를 한 뒤 그만뒀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윤창중 대변인의 귀국 종용에 관한 엇갈린 진술 속에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고 성추행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고 했다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인턴 사원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여러 얘기가 나돌아 청와대 선임행정관에게 곧바로 알렸고,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보고를 묵살한 건 절대 아닙니다.”

한국문화원은 해명에 나섰다. 해당 여직원의 사직은 대통령 방미 행사 이전부터 결정된 것으로 공교롭게도 시점이 겹쳤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곧 윤 대변인이 워싱턴 덜레스공항으로 이동한 수단이 택시가 아니라 미국 주재 한국문화원의 관용차라는 주장도 나오며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정황도 하나씩 거론됐다.

사람들은 아이디 ‘76-19.98’를 주목했다. 가려져 있던 진실이 숨은 저격수에 의해 드러나고 있었다.

◇방미 성과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이건 ‘콩가루 청와대’의 국기문란 사건입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몇 명 문책 같은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에요. 박 대통령도 대국민 직접 사과를 통해 뼈에 사무치는 교훈을 얻어야 해요.”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새누리당도 이번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태열 비서실장까지 나섰지만 여론은 잠잠해질 줄 몰랐다. 윤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방미성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을 분리해 접근하긴 했지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박 대통령은 의자에 기댄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방미 성과가 만족스러웠다. 안보와 경제에 대해 걱정이 큰 상황에서 미국과 돈독한 공조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대북 문제에 있어서도 양국 간 공조를 더욱 확고히 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도 3억80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말도 안 되는 성 추문으로 모든 게 얼룩지다니.

박 대통령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제가 직접 사과하겠습니다.”

5월13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힐 것을 약속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고, 미국 측의 수사에도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 등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사과 수위를 높였다. 또 5월15일 윤 대변인을 직권 면직 처리했고, 22일에는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표마저 수리했다.

“진정성이 담겼어요. 이제 퇴색된 방미 성과를 알려야죠.”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사과를 하며 한숨을 돌렸다. 반면 민주당은 본질은 외면한 사과라며 비판을 이어갔지만 하루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고 여야가 민생문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공세의 강도를 신중히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충격적인 소식 잇달아 공개돼…“도대체 처벌은 언제?”

“우리 엄마가 ‘한국 정부의 잘 나가는 사람(Government Big Way)’과 바람이 났어요.”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국인 남자가 미국인 남매의 엄마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이 TV에서 흘러나왔다.

TV 화면을 쳐다보던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을 비볐다. 미국의 NBC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서 윤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풍자하는 방송을 내보낸 것. 대통령의 사과로 조금이나마 진정됐던 국민들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국제적 망신입니다! 왜 아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겁니까?” 국민들은 이번 사건이 외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모자라 풍자되는 것까지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피해 여성 A씨의 아버지의 인터뷰도 공개되며 충격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엉덩이를 친 것을 가지고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겠습니까?”

A씨의 아버지는 17일 국내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추행이 상당한 수위였음을 시사했다.

이후 여론은 더욱 성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윤 대변인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사람은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됐다.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그랬다.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는 5월13일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아직 수사 중이고 지극히 경범죄로 신고된 사안인데 성폭행을 해서 그 사람을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한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날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쇄도했고 더코칭그룹 홈페이지는 다운돼 버렸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도 윤 전 대변인을 성추행 혐의로 신고한 여성을 ‘종북 페미니스트’가 보낸 ‘꽃뱀’에 비유한 듯한 발언을 해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결국 여론을 의식한 듯해 정미홍 대표는 다음 날 트위터에 “윤창중 씨에 대한 극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기자회견의 내용을 믿고 싶었지만 그가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게 거의 확실하군요. 이 사건으로 이 사회와 박근혜 정부가 받게 된 상처가 너무 커서 마음이 아픕니다”는 입장을 표명, 상황을 정리했다

◇윤창중 자택 칩거 이어져… 미국서는 체포영장 발부

윤창중 전 대변인은 한 차례의 해명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시 기자들은 윤 전 대변인의 집 앞에 진을 치며 그를 기다렸으나 머리카락 한 올 볼 수 없었다.

칩거가 길어지자 온라인에는 진짜 숨은 저격수는 자취를 감춘 대신 제2의 ‘76-19.98’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윤 전 대변인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지금 파다해요.”

“윤 전 대변인이 치킨을 시켜 먹었다네요?”

“윤 전 대변인이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을 고소했다네요.”

윤 전 대변인을 향한 숨은 저격수를 자처한 이들은 많았지만, 이들은 허위 사실만을 남겼다.

사건이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여성단체들이 나섰다. 전국여성연대와 통합진보당 관계자 등 여성 1000명은 6월4일 윤 전 대변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윤 전 대변인은 여성 성추행과 거짓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성폭력범죄특례법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및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합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달 13일 이 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했고, 검찰은 당장 직접 수사를 진행하기보다는 일단 미국 경찰의 수사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사건은 답보 상태에 있었다. 여러 뉴스가 쏟아지며 윤 전 대변인의 사건도 수면으로 가라앉았다.

한 달여가 지난 7월21일. 미국 경찰이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지 경찰이 ‘경범죄(misdemeanor)’ 혐의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신청했고, 연방검찰청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기사가 쏟아지자 법무부 관계자는 “현지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해서 연방검찰청이 검토하는 상황 같다. 아직 발부됐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이 사실이면 윤 전 대변인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만약 체포영장 신청이 사실이 아니라도 이미 기사화가 됐다는 것은 우리가 사건의 진실을 마주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통령까지 나서 윤 대변인의 성 추문에 관한 유감을 표명했으나 아직 이 사건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엇갈린 진술 속에 미국 현지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호텔 바의 CCTV를 확보하며 한 걸음 진실에 다가서고 있다. 아직 윤 대변인은 경기도 김포 자택에서 칩거하며 여러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번 사건이 문화적 차이에서 온 개인적인 사건으로 끝날지, 혹은 청와대가 개입해 은폐를 시도한 조직적인 스캔들이 될 지 진실의 동전은 하늘로 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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