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식량주권을 다시 생각한다- 권영업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전작과장

입력 2013-05-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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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만년경 농사법이 발명되면서 식량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증가하였고, 그만큼 인류는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후 식량 생산은 인류문화 발전과 국가의 생존에 다른 어떤 요인보다 크게 영향을 미쳐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나라가 부유하든 빈곤하든 관계없이 여전히 식량 생산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산업임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70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작물을 생산하는 농경지 면적은 15억ha 정도 된다. 그런데 농경지의 대부분을 미국과 같이 국토가 넓은 몇몇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만이 식량을 수출할 수 있고 많은 나라들은 식량이 모자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이웃 일본과 함께 세계적으로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은 나라에 속한다. 사료를 포함한 전체 곡물자급률이 25%도 되지 않아 매년 엄청난 양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시장자유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물결과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타결은 세계시장의 벽을 허무는 무한경쟁시대를 열었다. 농산물도 예외 없이 대부분의 나라들이 좋든 싫든 시장 개방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세계 흐름 속에서 매년 엄청난 양의 식량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식량안보 측면에서 식량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라는 화려한 논리는 우리나라처럼 농업 생산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그저 불안감을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 조상은 이 땅에서 얻은 곡식으로 ‘밥을 짓고 떡을 만드는 우리만의 음식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먹을거리를 사계절 동안 생산하면서 우리만의 농법과 문화도 일궈 온 것이다. 한 나라의 식량주권이 흔들린다면 국민의 생존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도 보장할 수 없다. 경쟁력이 절대가치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도 식량 확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1970년대 통일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부족한 쌀을 자급함으로써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녹색혁명의 신화를 창조한 경험이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우리의 고유 문화를 가꿀 수 있게 한 것 다음으로 훌륭한 발명이 통일벼라는 평가도 있다.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낳은 것은 국가의 강력한 지원 속에서 이룩한 기술개발과 농민의 피땀 어린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부족한 식량을 다른 산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도입하여 해결해 왔다. 돈만 있으면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예측이 불가능한 천재지변들이 세계 곳곳에서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흉년이 들고 국제 곡물가격은 널뛰기를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쩌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시대가 우리 가까이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농산물의 차별성과 경제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수히 많다. 우선 외국 농산물보다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은 다양한 품종과 기능성도 개발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안정생산 기술 또한 확보해야 한다. 식량생산을 담당하는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식량주권을 확보·유지하는 일은 국민의 의지가 담긴 국가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일반기업은 식량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이 미래가 불투명하고 투자에 대한 회수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기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은 국가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후손들의 생존을 보장하고 미래의 선진 조국을 창조하기 위한 장기적 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국가 주도 경영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고유 문화와 먹을거리를 지키고자 하는 온 국민의 깊은 애정과 끊임없는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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