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홍보맨의 오월, 그 쓸쓸함이여- 조영석 금호아시아나그룹 홍보담당 상무보

입력 2013-05-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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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깼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까지 골프 약속을 잡다니. 어버이날 저녁도 술 약속. 간이 가출했다. 아무래도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남편은 풀어주면 속도위반 하는 줄도 모르는 ‘회사형 인간’이다. 둘째 아이 초등학교 6년간, 운동회에 코빼기도 안 보였다. 아빠와 함께 하는 체육대회를 표방하며 매년 근로자의 날에 운동회를 여는 학교 정책도 못마땅하다.

“현민 아빠는 안오셨어요?”, “운동 갔어요”, “현민 아빠 운동선수에요?” 남편들 달고 와서 염장 지르는 아줌마 군상들. 속 뒤집어진다. 참을 만큼 참았다. 나, 홍보맨의 마누라다.

# 깨졌다. “10월에 보자구요? 무슨 골프 약속에 몇 달씩 걸리나? 됐어요. (뚝)”. 수첩을 살피다 가족 일정으로 비워둔 주말 몇 개를 지운다. 끊긴 전화를 살린다. 죄인 모드다. “괜찮으시다면 어린이날 어떠세요. 오케이~ 그 날 하시죠”.

가정 없는 가정의 달이 또 이렇게 시작된다. ‘부부의 날’도 생겼다지, 쩝. 무슨 날들은 왜이리 많이 생기나. 모든 게 상술이라고 큰 소리는 치지만 뒤는 켕긴다. 얼큰한 술기운에도 집안 냉기가 소름처럼 돋아난다. 뭔가? 이 끝 모를 불안감은. 나, 홍보맨이다.

# 쓸쓸해졌다. “확인 전화라도 한번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럼 기사 뺄 거잖아요?”

이쯤이면 기업 홍보실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조력자라고 생각해 온 지난 시간이 부끄럽다. 그간 보아 온 기자들의 모습은 이렇다고 믿는다. 다양한 목소리를 여과 없이 듣는다. 균형의 추를 맞춘다. 사실과 주장을 구분한다. 모든 제보는 반사이익의 함수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제보의 프레임에 갇혀선 안된다, 독 나무는 독 과일을 단다. 새로 만날 기자들도 그러리라 믿는다. 그러나 불쑥. 언론 자유의 장애물인양 홍보 채널을 대하는 고루한 생각들. 젊은 기자들의 낡은 생각 앞에 때때로 쓸쓸해진다.

# 하염없이 쓸쓸하다. 조찬을 같이했던 어느 날 A그룹 홍보 임원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다. “오늘 부로 해임되었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멍해졌다. 그 이가 보여줬던 헌신과 로열티는 어쩌란 말인가. 회사 입장을 옹호해주는 기사나 칼럼을 담아 일일이 문자메시지를 날리던, 열정적인 그 분이, 사약 같은 해임통보를 들이 마시고, 쓸쓸히 갔다. 이 환장할 봄날에 목련 목 떨어지듯, 뚝. 뚝. 그 분도 아빠 없는 어린이날의 ‘운동 선수’ 아빠였으리라. 참말로, 홍보가 기가 막힌, 잔인한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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