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유쾌통쾌]편의점의 비명

입력 2013-04-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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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상영된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은 사랑 얘기다.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함을 느끼게 했던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자본주의의 대표적 공간 중에 하나인 편의점이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충칭 익스프레스’라는 포장판매 전문 외식업소지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일상과 삶을 표현해주는 편의점 같은 곳이다. 20년 전 영화 속 이 공간은 답답한 일상을 대변하면서도 사랑을 이어주는 묘한 곳으로 그려진다.

2013년 대한민국 편의점의 풍경은 영화보다는 더 현실적이다. 아니 살벌하다는 느낌이 더 적절하다.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일상이 그려지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로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 모습이다. 먼저 편의점 본사의 불공정거래 때문에 가맹점주들의 처절한 삶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본사에 대한 여론은 극도로 나빠졌다..

24시간 영업이라는 계약의 덫 때문에 불치병인 암에 걸려도 장사를 접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부터 고액의 위약금을 물고 다른 브랜드로 개업했지만 본사의 보복성 출점 때문에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한 가맹점주의 이야기까지 안타까운 사연은 꼬리를 물었다. 웬만한 직장인들보다 수입이 낫다는 말만 믿고 계약서에 사인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들은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겪은 이런 피해 사례들을 토대로 가맹사업법 개정에 나섰다. 개정안은 △근접출점 제한 △24시간 심야영업 강요금지 △과도한 해지위약금 금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가맹점주들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본사의 실적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편의점 빅3의 매출과 실적은 대부분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편의점 수도 계속 늘어났다. 크진 않지만 늘어난 현금은 본사 직원들의 인센티브로 지급되기도 했다. 이들은 가맹점주들의 고혈을 빼먹으며 자신들의 배만 불린 걸까?

업계에서는 피해를 입은 가맹점주들의 사례는 일부일 뿐, 큰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시장이 한계에 달해 더이상 출점할 곳이 없긴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 살 만큼의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규제와 시장 포화로 출구전략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향후 성장성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하지만 편의점 내부에서도 본사와 가맹점주 간의 불신에 대해 크게 걱정한다.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점주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늘어났고, 현장 영업사원들은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면박을 주며 본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나 전화 통화할 때도 싸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냉랭한 관계가 지속돼 일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일상의 지루한 반복과 외로움을 대변하는 편의점,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꿈꾸는 것은 더이상 말도 안되는 일일까? 편의점 본사는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하지 말고 가맹점주들에게 화해의 손부터 내밀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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