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을 부숴라] "여성 위한 배려?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주세요"

입력 2013-04-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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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출산·육아 등 경력 단절 높아… 직장 내 ‘암묵적 차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기업에서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는 있다. 직장과 집안일의 양립. 다시 말해 임신과 출산, 육아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유리천장이 파열음을 낸다고 해서 붕괴를 말하기에는 이른 게 현실이다. 여성의 임원 승진이 방송·신문의 뉴스인 것 역시 이 같은 사회적 배경이 엄연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여성 인력수 절대 부족= 재계 1위인 삼성의 경우 전체 임원(1899명) 중 여성 임원은 39명에 불과하다. 불과 2.1%다. 여성 직원 비율도 25.3%에 그치고 있다. 특히 철강, 중공업, 자동차 등 소위 말하는 굴뚝업계에서 여성 임원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현대자동차는 전체 828명의 임원 중 단 2명만 여성이다. 포스코는 1명, 현대중공업은 아예 없다.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더욱 찾기 어렵다. 재벌 및 CEO 경영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최근 국내 상장사의 여성 CEO 현황을 조사한 결과 유가증권과 코스닥 상장기업 전체 1787개사에서 여성 CEO 수는 13명(0.73%)에 불과했다. 더구나 오너 가(家)를 제외하면 단 9명뿐이다.

글로벌 경영잡지 포춘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 세계 1000대 기업 CEO 명단에서는 42명의 여성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6배를 넘는 4.2%다. 그들은 전 세계 랭킹 10위인 HP와 19위 IBM, 41위 펩시, 72위 듀퐁 등 세계적 기업들을 맡아 남자 CEO를 압도하는 경영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여성 CEO가 이끄는 기업 중 최고는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로 107위에 그쳤다. 이어 134위에 최은영 회장이 이끄는 한진해운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은 오너 일가이기에 유리천장을 깬 CEO로 보기는 어렵다. 비(非)오너가의 여성 CEO가 이끄는 기업의 최고 랭킹은 양윤선 사장이 이끄는 메디포스트로, 193위에 불과하다.

특히 국내 기업에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여성 비중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10대 그룹 상장사의 여성 직원 비율은 20.3%이며, 여성 임원 비율은 1.5%, 상장사 여성 CEO 비중은 0.7%라는 게 이를 잘 보여준다. 유리천장이 아닌 ‘콘크리트 천장’이라는 말이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성의 경력 단절 비율 지나치게 높아=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경력 단절 여성은 197만8000명이다. 기혼여성 974만7000명 중 20.3%에 해당한다. 2011년보다 7만8000명(4.1%) 늘어났다. 경력 단절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사유를 살펴보면 △결혼 92만8000명(46.9%) △육아 49만3000명(24.9%) △임신·출산 47만9000명(24.2%) 순이었다.

결혼·출산·육아 부담 등으로 여성이 회사에서 경력을 쌓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경기악화 때면 여성 채용을 줄이고 여직원을 우선적으로 구조조정하는 행태나 승진에서의 차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도 경력 단절 여성을 늘리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출산·양육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수준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난해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5% 정도에 불과하다. 여성 임원 할당제를 강력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성 임원 할당제는 기업 내 여성 고위직을 늘리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일정 비율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벌금을 부과하거나 정부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노르웨이, 핀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이 40%의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직장 내 여성에 대해 명백하게 드러나는 차별은 없어졌지만 암묵적 차별은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여직원이 임신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출산휴가 대신 그만두기를 원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천신만고 끝에 유리천장을 뚫었다 해도,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부담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중 부담’의 저자 알리 혹스차일드는 “여성들이 일터에서 그 나름의 권리를 확보했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가 인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하루 평균 3시간, 남성은 하루 평균 17분 동안 가사 노동을 하며, 하루 중 완전히 아이만 돌보며 지내는 시간은 여성 50분, 남성은 12분이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쉴 새 없이 일을 한다는 얘기다.

여성에게 무분별한 배려보다 평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수경 한국P&G 사장은 최근 한 칼럼에서 “많은 여성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평등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며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은 많이 개선됐지만, 업무 현장에서는 여성을 배려하고 책임을 덜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기회까지 덜어내 버리는 경우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합당한 능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책임과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때로는 어려운 과제도 극복해야 한다”며 “혹독한 성장과정을 이겨낼 의지가 있는 여성 인재를 지레짐작으로 편안한 길로만 인도하는 것은 배려가 아닌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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