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광석 바리스타 "박사 출신 바리스타로 사는 법"

입력 2012-12-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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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이광석.
나는 바리스타다. 올해로 5년째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면서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커피전문점은 복잡한 마트 내에 있는 프랜차이즈 숍이다. 마트 안이라고 해서 단골손님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오가는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소소하게 사는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주로 40~50대 주부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스스럼없이 대화를 잘 나누게 된다.

젊은 청년이 혼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한다고 하니 대견하게 보기도 하고, 가끔은 안쓰럽게 보기도 하는 시선을 나는 고스란히 느낀다. 그중에서도 ‘아, 이곳이 대한민국이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일은 번번이 달라지는 시선이다. 그냥 커피전문점의 바리스타로서 나를 대하던 말투나 시선이 학력을 알고 나면 크게 달라진다.

나는 외국의 명문대학교에서 석,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후 외국으로 건너가 랭귀지를 마치고 다시 그곳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오랜 동안의 외국 생활 탓인지 한국에서 좀처럼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이미 나이도 많이 먹게 됐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바리스타다. 내가 석, 박사 과정을 밟은 것과 커피 맛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지금의 나에게 9년 동안의 외국 생활은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손님들은 “박사님이라면서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라며 호들갑을 떤다. 그런 소문은 마트 내에서도 삽시간에 퍼졌다. 종종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러 와서는 “어휴~ 박사님이라면서요?”라고 묻고는 “대단 하시다”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70대의 한 노인은 요즘 매일같이 매장을 방문한다. 이전에는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커피 맛이며, 종이컵, 가게 안 분위기 등 트집 잡기 일쑤였던 노인은 요즘 내가 민망할 정도로 “박사님, 박사님” 부르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외국 생활을 이야기한다. 그때마다 “학식이 있으시니까”를 빠뜨리지 않고 덧붙인다. 한국은 학력에 따라 순식간에 ‘커피 장사’에서 ‘박사 출신 바리스타’로 대접받는다. 지독한 학력주의와 편견이 나는 싫다.

한국에서 학부를 시작으로 총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제무역을 공부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탬핑할 때의 압력에 따라서 커피의 맛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커피를 추출할 때 크래마는 얼마나 나와야 하는지, 시간은 몇 초나 걸려야 하는지 매일 시도해 본다.

내가 추출하는 커피의 맛은 내 박사학위가 정해 주지 않는다. 매일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는 나의 노력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속물근성을 드러내며 말한다. “박사님이 타주는 커피 마시러 왔다”고. 그토록 살가운 사람일수록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대하는 태도는 도도하다.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건물 관리인을 대하는 태도와 회사의 대표이사를 대하는 태도가 동일한 사람이 되라”고. 이런 대한민국에서 과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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