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티호미르 파우노프스키 전 배구 코치 "타국에서 찾은 배구에 대한 열정"

입력 2012-11-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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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티호미르 파우노프스키(42)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냥 ‘티호’라고 부른다. 마케도니아 국적이고 현재 직업은 없다. 원래 직업은 배구 코치지만 현재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바는 없고 한국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알진 못하지만 한국에서도 마케도니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 고향은 정치, 사회, 종교적인 혼란이 지속되면서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냉전시대를 경험했고 동구권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본 세대로서 느끼는 바도 많다.

물론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급한 대로 나는 배구 코치고 전직 배구선수다. 마케도니아와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독일, 네덜란드, 키프러스 등에서 선수로 뛰었고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은퇴 후에는 마케도니아 대표팀 코치와 남녀 클럽팀 코치 등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9월부터 1년간은 이란 클럽팀에서도 코치를 맡았다.

최근 이란에서 경험한 일을 말하려고 한다. 나는 스포츠 선수라는 특권 아닌 특권으로 해외에서 뛸 기회가 많았다. 경력이 좋아 대표팀 코치도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고 파산하는 클럽도 많아져 국내에서 기회가 없었고 결국 그다지 내키진 않았지만 돈을 벌 목적으로 이란으로 향했다.

제의를 받았을 때 썩 내키지 않았던 이란이었지만 당시 1년은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이란은 한마디로 배구국가다. 축구보다 배구의 인기가 더 높다. 내가 지도했던 팀은 테헤란에서도 5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아몰(Amol)’이라는 소도시에 연고를 둔 '칼레'라는 클럽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3천명 정도의 관중석이 꽉 차는 것은 물론 표를 사지 못해 되돌아가는 사람이 족히 입장한 관중만큼은 될 정도였다. 수도 테헤란으로 원정을 떠나면 5000석이 넘는 관중석도 순식간에 매진이었다.

국제 경기를 제외하고 클럽 경기에서 이처럼 많은 관중들을 본 적은 사실 없었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이란에서의 생활은 힘들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돼지고기와 술을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공식적으로는 성인 여성과 절대 단 둘이 있을 수도 없는 생활, 훈련 중이라도 기도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훈련을 중단하고 기도를 하는 모습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쭈그려 앉아야 하는 화장실 문화 때문에 이제는 뚱뚱해져 버린 나로서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도 큰 고역이었다. 물론 구단에서 내 숙소의 변기는 서양식으로 바꿔줘 그나마 불편을 덜 수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의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나는 이란에서의 1년 동안 배구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사실 지도자의 길도 좁고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현역 시절 수상스포츠 강사나 안전요원 자격증도 제법 많이 따놓았고 외국에서 생활할 때마다 해당 외국어도 열심히 배웠다. 영어, 독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보스니아어는 물론 러시아어도 구사할 수 있고 이제는 페르시아어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배구를 떠난 삶을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낯선 나라 이란에서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경기장을 찾아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신발조차 제대로 갖춰 신지 못한 아이들이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토스 연습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배구를 시작할 때의 열정을 되찾았다. 물론 앞으로도 내 고향 마케도니아에서는 지도자로 나설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선수들을 지도하며 지금의 열정을 이어가고 싶다. 혹시 아는가. 한국에서 생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에는 이 글을 한국어로 쓸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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