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리포트 대해부]매도 의견도 과감히…외국계 보고서에 상장사들 '공포감'

입력 2012-09-0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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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 센 외국계 증권사

#외환위기가 한반도를 강타한 1998년,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은 사실상 부도상태에 놓였지만, 국내에서는 증권사는 물론 정부나 경제학자, 언론 등 그 누구도 이를 경고하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일본의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의 고원종 연구원(현 동부증권 사장)은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Alarm bells is ringing for Daewoo group)’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대우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국 대우그룹은 이듬해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김우중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다.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의 국내증시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목표주가를 터무니없이 낮게 제시하더라도 해당 종목의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가 흔하다.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먼저, 국내증시를 외국인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국내증권사의 리포트보다는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를 참고해 투자에 나서기 때문에 자연히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낙관론 일색인 국내 증권사의 리포트와는 달리 과감하게 ‘매도’ 의견을 내놓는다는 점과 세계적 투자은행(IB)의 ‘이름값’도 투자자들에 믿음을 주고 있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계증권사의 리포트는 자유롭고 공격적인 경향이 있어 투자의견이나 전망을 국내 증권사에 비해 직설적으로 밝힌다”며 “글로벌 대형기관의 명성이 걸려 있어 맞고 틀리는 것을 떠나 일단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증권사의 리포트와는 달리 개인투자자가 아닌 투자금액이 큰 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며 “이들은 한국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어서 여러 나라의 동종 업종 종목까지 비교할 수 있는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가 내용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큰 입김을 발휘하면서 금융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외국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한국경제에 대한 자의적·부정적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을 유의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7월 노무라증권과 모건스탠리가 유럽 재정위기 악화 시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의 대외 상환 능력이 가장 취약하다는 리포트를 발표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금융위원회도 조목조목 리포트의 내용을 반박하는 자료를 만들어 권 원장을 지원 사격했다. 그만큼 국내증시에서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금융당국조차 어쩔 수 없는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에 개별 상장사가 느끼는 부담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외국계 증권사에 찍히면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 2월초,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실적이 흑자로 전환됐다고 발표하면서 향후 실적 개선 기대감을 높였다. 주가도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여 만에 9만원 선으로 올라섰다.

이때 외국계 증권사인 CLSA증권은 LG전자의 목표주가로 터무니없이 낮은 6만2000원을 제시하며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냈다. 시장에서는 30%이상 낮은 목표주가 제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주가가 30%이상 빠질 확률도 낮다고 봤다. 당시 국내 증권사들은 내리기는 커녕 LG전자 실적 발표 이후 목표가 올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터무니없어 보이던 목표주가는 곧 현실이 됐다. 리포트가 발표된 후 외국인의 지속적인 매도가 이어지며 LG전자의 주가는 7월, 5만원 중반 대까지 떨어졌다. LG전자는 금액상으로 올해 외국인 가장 많이 팔아치운 주식이 됐다. 지난달 말까지 순매도 누적금액만 1조2205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만 못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국내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수준도 외국계 증권사에 뒤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은성민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의 영향력은 똑같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평준화되고 국내 증권사의 실력도 올라왔기 때문”이라며 “과거와 달리 국내증시가 선진화되면서 논리의 뒷받침 없이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는 외국인의 매수세가 장기적으로 계속될 때 영향력을 갖는데 최근 외국인들의 매매패턴의 변화가 심해지면서 예전보다 영향력이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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