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貸 가족' 전성시대]우리 가족은 '貸出 가족'

입력 2012-07-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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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위해 돈 빌리지만 갚을 능력 없어…2금융·저소득층·고령층 대출 늘어 문제

#. 여기 평범한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 박기춘(51세·가명)씨는 24년간 다닌 중견기업에서 퇴사한 후 치킨집 차려보고자 이곳 저곳 다니며 시장조사에 한 참이다. 어머니 이미옥(48세·가명)씨는 남편 창업자금에 도움을 주고자 만두전골 음식점에서 시급 6000원에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지만 변변치 못하다.

33세 큰 딸 박영주(가명)씨는 직장 5년차로 연봉 3300만원을 받으며 중소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예식장이며 예물까지 돈 들어가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상황도 아니다.

군대 제대후 3학년 복학을 앞둔 25세 박기범(가명)군은 등록금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건축학과에 다녀 다른 일반학과보다 등록금도 비싸고 자격증도 따려면 학원비도 필요하니 아르바이트로 해결하려면 학업에 소홀히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가족은 서로 모르게 대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언론에서 떠드는 ‘금융권의 뇌관, 가계부채’ 문제를 논하는 것은 뜬 구름잡는 얘기. 당장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박기춘씨는 기업은행에서 닭·오리 등 육류 훈제 가공식품 도소매 창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시니어창업대출’을 통해 3000만원 대출을 우선 받았다. 그리고 아내 이미옥씨와 함께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국민은행으로 향했다. 아내 개인으로 신용대출을 받아 보태려고 했으나 전업주부의 경우 대출 연체 기록이 없다고 해도 일정한 소득이나 금융거래 실적이 없어 대출이 잘 안된다는 장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노원구에서 평생 일해 장만한 시세 4억원의 A아파트를 담보로 10년 분할상환 고정금리 대출로 2억원을 빌렸다.

큰 딸 박영주씨도 급한 마음에 평소 월급통장으로 거래하는 우리은행을 찾아 대출을 받았다. 중소기업이지만 회사가 건실하고, 박 씨 역시 그 동안 세금이나 카드값 등 연체없이 성실하다는 점이 반영돼 1000만원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박기범 군은 쉽게 돈을 빌리고자 저축은행을 찾았지만 요새 워낙 부실얘기가 많아 빌려주기가 어렵단다. 문득 케이블 광고를 떠올린 박 군은 유명 대부업에서 우선 500만원을 빌렸다.

한국 사회의 ‘대(貸)가족’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가계신용 기준)는 912.9조원으로 연중 7.8%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금융당국에선 가계부채 부피를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들도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대출금리와 상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가 하면 대학생과 청년층을 대상으론 저금리로 전환할 수 있는 대출 제도를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창업할 때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명목하에 청년창업재단이 설립되기도 했다. 이러나 저러나 외관상으로만 발버둥 칠 뿐 대(代)를 잇는 빚은 늘어나고 있다. 돈을 빌려야하는 이유들은 한 없이 늘어나는데 돈을 갚고, 벌 수 있는 여력은 갈 수록 좁아지고있기 때문이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정도를 측정하는 가계 신용위험지수는 올해 3분기 38까지 치솟으며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금융권, 저소득층 대출, 고령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이는 금융부분 노력만 가지고는 해결하기 힘들다”라며 “사교육비, 통신비 등 필수 지출 항목에 들어가는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는 정책들, 실질소득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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