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개인정보보호법 시행 한달 "그런 법이 있나요?"

입력 2012-04-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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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부족에 국민들도 잘 몰라…포털 해킹사고등 무방비 노출

# 서울 성북구의 한 도서대여점. 20대 남성이 책을 빌리기 위해 카운터에서 이름을 댔다. 종업원이 볼 수 있는 모니터에는 이 남성이 가입 당시 기입한 주민등록번호, 유·무선 번호, 주소 등이 줄줄이 나타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불법이다. 현행법상 불필요한 주민번호의 수집과 보관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도서대여점 종업원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 서울 구로구의 한 편의점. 수취인이 아직 가져가지 않은 택배박스 여러 개가 이리저리 놓여있다. 박스의 겉면에는 받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 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가 자세히 적혀 있다.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저장한 뒤 문자용 어플을 실행시키면 수취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 편의점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손님이 카운터 옆을 지난다.

지난해 9월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이 6개월의 계도기간을 끝내고 본격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국민들에 대한 홍보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개인정보보호법 자체를 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법자가 되고 있었다. 개인정보보호 담당자까지 있는 어지간한 중소기업에서도 법이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이다.

▲지난해 7월 국내 굴지의 포털사이트인 네이트 이용자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같은 사건을 막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시행 후 계도 기간 6개월을 보내고도 한 달이 다가오지만 여전이 홍보와 교육이 부족한 상황이다.
◇ 당신의 개인정보는 여전히 ‘보관 중’

서울 동대문구의 한 소규모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있는 컴퓨터에는 여태까지 모든 고객들의 고유 정보가 담긴 거래계약서가 저장돼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불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한모(47)씨는 이같은 내용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업무 특성상 어떻게 (개인정보가) 없을 수 있느냐"며 "모르긴 몰라도 전국의 다른 부동산 사무소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 휴대폰 판매점에도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이곳의 판매원 역시 관련법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점주 유 모(32)씨는 “이게 불법인 줄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공무원이 방문이나 전화로 관련 법의 시행을 알린 적은 전혀 없었다”며 “매일 우편물을 확인하지만 안내 책자도 날아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의 사정이 비슷했다. 취약한 보안을 생각하면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굴지의 포털사이트 네이트에서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유명 오픈마켓인 옥션에서도 2000만 명의 개인정보가 빠져 나가는 등 사고가 빈번했다. 정부는 빠져나간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사업장에서 개인정보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제대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업자와 종업원이 개인정보보호법 자체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알고 있다고 해도 전문가의 설명 없이 법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부칙을 포함해 법률 82개조문과 시행령·시행규칙 77개조문을 담은 방대한 법령이다.

◇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홍보·교육

정부는 시행초기 사회적 혼란을 고려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의 계도기간을 뒀다. 계도기간은 규제를 미루고 일단 국민들에게 새 법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간이다. 하지만 한 중소기업 담당자는 “정부에서 안내용 메일 하나가 도착했을 뿐 설명회와 같은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행사실도 TV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체에 대한 홍보의 많은 부분을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에 요청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설명회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불과하다. 참석 인원은 각각 150명, 180명에 불과하다. 민간부문 개인정보 처리자 수가 약 320만 명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빈약한 홍보’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달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계도기간 동안,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의 내용과 필수 조치사항에 대해 적극 안내·홍보해 왔다”고 자평했다. 또 “생업에 바쁘고 여력이 없는 중소사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해 상담과 무상 기술지원을 실시하고 생활밀착형 업종에 대해서는 찾아가는 컨설팅을 실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계도기간이 끝났지만 시행 초기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박찬옥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 운영국장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만큼 홍보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며 "교육홍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체계 부분에서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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