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 고이즈미 개혁의 사령탑 '다케나카 헤이조'

입력 2011-06-15 14:40 수정 2011-06-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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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편집자주 :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를 거쳐 중동의 ‘재스민혁명’까지, 글로벌 경제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깊은 고찰과 비전으로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학들의 시각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석학들의 비전을 분석하고 상아탑을 넘어 실물 경제의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경제이론과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글 싣는 순서>

①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②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③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④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⑥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⑦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⑧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

⑨ 존 내쉬 프린스턴대 박사

⑩ 앨빈 토플러 뉴욕대 학사

⑪ 폴 새무얼슨 하버드대 박사(2009년 사망)

⑫ 오마에 겐이치 UCLA 교수

⑬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⑭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학원대 교수

⑮ 노구치 유키오 와세다대 교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성역 없는 개혁’에서 야전 사령관 역할로 주목을 받은 학자가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학 교수다.

다케나카 교수는 구조개혁과 규제완화, 재정지출 무용론, 긴축 재정, 우정 민영화, 작은 정부를 비롯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개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는 게이오대학의 글로벌 시큐리티 연구소 소장직을 비록해 인력파견업체인 파소나그룹 이사회 의장, 아카데미 힐스 이사장 등 학계와 정재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다케나카 교수가 일본 지방의 나막신 장사꾼의 둘째 아들에서 정계의 중심에서 칼날을 휘두르는 권력자로 부상하기까지는 화려한 인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와카야마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친 다케나카는 일본 상경대학 중에선 내로라하는 히토쓰바시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면서 도쿄로 상경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학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1973년 일본개발은행에 입사하면서부터다. 다케나카는 일본개발은행 연구소에 근무하던 중 1981년 갑자기 미국 하버드대학으로 유학 길에 오른다.

당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대장성(현 재무성) 재정금융연구실로 파견 나와 차석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원래 2년 예정으로 연구실에 파견을 나왔지만 로런스 서머스와 제프리 삭스 등 세계적인 석학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5년이나 연구실에 발목이 잡혔다.

다케나카 교수는 1987년부터 2년간 일본 오사카대학 경제학부 조교수를 거쳐 1989년에는 삭스 교수의 권유로 잠시 하버드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강단에 섰다. 이후 1990년 현재 몸담고 있는 일본 게이오대학으로 건너온다.

그의 미국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3년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에 있는 일본경영연구센터에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게이오대학으로 돌아와 정교수 자리를 따냈다.

그의 잦은 미국행은 나중에 고이즈미 전 총리와 호흡을 맞추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정계에 입문한 다케나카 교수는 2000년 한 해로 단명한 모리 요시로 내각에서도 능력을 가감없이 발휘했다.

이는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고이즈미 1차 내각에서 경제재정정책담당상과 금융담당상을 겸임했다.

2003년 고이즈미 2차 내각에서는 내각부 특명담당상과 금융경제재정상을 겸했다. 고이즈미 3차 내각에서는 총무상 겸 우정민영화담당상에 취임, 공영방송인 NHK의 완전 민영화에 앞장섰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불화로 노력은 좌절됐다.

이를 계기로 다케나카 교수는 임기를 4년 가까이 남겨 둔 2006년 9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게이오대학으로 완전히 복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케나카 교수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케인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던 고이즈미 정권 하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의 '작은 정부 주의'는 케인즈주의를 추종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반박한 데서 비롯됐다.

케인즈 이론에서 불황의 원인은 수요 부족에 의한 소비 침체, 즉 생산 능력은 있지만 상품이 팔리지 않는 디플레이션 갭이다.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나 공공투자를 통한 수요확대로 경기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다케나카 교수는 케인즈 이론에 반기를 든 멘델-플레밍 효과(금융정책에 변화를 주지 않고 재정정책을 사용할 경우 금리 상승 등으로 인해 재정 지출 효과가 감소하는 것), 크라우딩 아웃(국채의 대량 발행에 의한 경기 침체),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이론,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재정적자가 겉잡을 수 없는 불어나는 상황에서는 수요 확대를 위해 재원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재원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는 선진국 최악 수준인 현재 일본의 재정 상황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일본은 경제규모에서 세계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국가 신용등급도 추락하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이 과거 작은 정부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로는 2000년대 들어 두드러진 저출산 고령화를 들 수 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정부의 몸집이 크면 다음 세대의 세금 부담이 점점 커진다. 여기다 고령화까지 진행되면 세계 부담은 젊은 세대에 집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돌파구를 모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의 성역없는 개혁은 일련의 고통을 수반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공산주의’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현재 일본에도 고이즈미 전 총리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케나카 교수에 대해선 평가가 다양하다. 학계와 정재계 마당발로 통하고 있지만 정작에 학자로서의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권력의 핵심에 발을 들여놨을 당시 여론은 “일본의 정치가 지식인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했다"면서 "근대화와 지성화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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