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여풍당당]④국내 '미디어아트' 선구자로 우뚝…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입력 2010-10-26 11:06 수정 2010-10-2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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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딸, 재벌가 안주인 "NO"

▲사진 / 연합뉴스
전직 대통령의 장녀, 재벌가의 안주인, 재계 이끄는 파워우먼, 미디어 아트 전문가. 노소영(49)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녀는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라는 타이틀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이자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최태원 회장만큼이나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노 관장은 지난 9월 한달간 열린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DAF) ‘모바일 비전: 무한 미학’ 행사의 총감독을 맡았다. 한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미디어아트 전문가인 그는 미디어아트 입문 20여년의 경력과 미디어아트 전문 전시공간인 아트센터 나비 운영 10년의 노하우를 토대로 다시 한번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스스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편견을 깨다”= 노소영 관장은 남편의 내조와 아이들의 뒷바라지 만으로도 바쁜 나날이지만 예술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INDAF 총감독으로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발로 뛰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다. 이같은 모습은 형식적인 틀을 싫어하고 소박하고 진지하게 살고 있는 그녀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개회사나 테이프 커팅식 만을 참가한 채 뒷짐지고 있는 여느 재벌가 사모님들과는 사무 다른 모습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의 딸, SK그룹의 안주인이란 수식어는 그녀의 일부분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미디어아트에 대한 개념 조차 없던 시기에 전문 공간 아트센터 나비를 설립, 지금의 미디어아트를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관장이 미디어아트에 입문한 것은 지난 1990년대 초반. 대전엑스포 때 오명 당시 조직위원장 밑에서 예술과 기술의 접목과 관련된 행사 기획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시어머니이던 박계희 여사(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부인)가 타계하면서 위커힐미술관을 맡아 본격적으로 미술계와 인연을 맺는다. 노 관장은 지난 2000년 서울 서린동 SK 본사 안에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미디어아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노 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문인에게 운영을 맡기고 저는 지원만 하고 싶었지만 나비를 설립할 때 불행히도 전문인이 없었다”며 “외국인을 데려오는 것도 쉽지 않아 하는 데까지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미디어아트는 SK그룹의 사업 한축인 통신사업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져 최태원 회장의 경영활동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다는 게 그룹 내부의 평가다.

하지만 노 관장의 전공은 ‘미술’이 아니다. 그녀의 경력을 보면 미술 전공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겠지만 미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노 관장은 서울대 공과대 입학을 시작으로, △미국 월리엄&메리대 경제학과 졸업 △시카고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스탠퍼드대 교육학과 석사 취득 △서울대 환경계획학과 석사 과정 △연세대 영상예술학 박사 과정 등 대학에선 공학을, 대학원에선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노 관장은 미술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몰론 어려움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2001년 음악과 산업디자인 등을 전공한 예비 작가 12명을 선발해 3개월 동안 밤샘 작업 끝에 자연과 인공 생명체, 사람 사이 3자 간 협연을 표현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고 한다. 그녀는 “작품이 완성되고 보니 우리가 뭘 만들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관객들도 이해하지 못했죠”라며 당시의 실패를 회고했다.

◇“세상과 소통을 원하다”= 노 관장이 꼽는 미디어아트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개성은 네트워크를 통해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성’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남자와 여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각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서로 연결돼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그녀의 생각은 보통 소시민들이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노 관장이 이같은 열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본인의 삶이 남과는 다른 상황에 내몰렸던 영향이 크다. 1980년 그녀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광주사태가 터졌다. 그녀가 지나가면 모든 학생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운동권 학생들을 보면서 가책과 갈증을 느꼈던 그녀는 오랫동안 방황했다.

“내게 20대는 암울한 시기였고 마치 유배 당했다고나 할까, 내가 선택한 삶은 아니지만 9년간 외국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도, 본 것도 많았다”는 노 관장은 “서울대 공대 입학 직후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을 느껴 학교를 로 못 다니면서 불평등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관점이 예술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SK그룹 한 관계자는 “노소영 관장이 예술과 디지털 기술이 접모하는 미디어아트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은 상태”라며 “불모지와 같은 국내 미디어아트 시장에서 몇 안되는 전문가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아트를 통해 왕성한 활동과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면서 “특히 지금도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던 시어머니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커서 종교를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과의 결혼 이후 노 관장에게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지난 2003년 남편인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 관장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최 회장의 그림자로 내조를 톡톡히 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지, 돈과 명예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노 관장은 최 회장이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조용히 고통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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