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음모론을 진실로 포장한 엔터테인먼트

입력 2026-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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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 올리버 스톤 감독, 1992년>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의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직후 초당적 조사를 위해 얼 워런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위원회는 1964년 9월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때까지 552명의 증언을 들었고, 3100건이 넘는 미 연방수사국(FBI) 및 비밀경호국의 보고서를 검토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조사 결과를 믿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67년 초에 뉴올리언스의 지방검사 짐 게리슨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가 클레이 쇼라는 사업가를 케네디 암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음모론이 파다했지만, 실제 그 혐의로 용의자가 기소된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즉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나는 역사적 상황일 수 있었던 거다. 그러나 2년에 걸친 조사 후 1969년에 재판을 했으나 무죄 판결이 났다. 기소가 워낙 부실해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는 데 1시간도 안 걸렸다. 12명이 각자 한마디만 해도 거의 1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음모에 대한 게리슨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고 1988년에 회고록도 출간했다.

영화 ‘JFK’의 주인공은 바로 이 짐 게리슨이고 그의 책에 상당 부분 바탕을 두었다. 바탕이 된 또 하나 책은 짐 마스의 ‘Crossfire’(1989)인데, 이 역시 음모론을 펼쳤다 (마스는 ‘Alien Agenda’라는 책으로도 유명한데 나도 40대에 읽고 정말 외계인이 있다고 믿었었다). 두 책은 영화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 책에만 근거한 건 아니고 감독의 상상에서 나온 장면들도 많이 있다.

이 영화나 책들이 주장하는, 혹은 암시하는, 음모론을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도 케네디 암살에 수상한 점이 많다고들 생각한다. 나도 한때 그랬다. 수많은 요소가 있지만 영화에서 가장 강조된 한 가지만 거론하겠다. 오스월드가 총을 쏜 위치는 케네디 일행이 탄 차량의 뒤쪽 위였다. 그런데 저프루더 필름(행렬을 구경하던 에이브러햄 저프루더라는 시민이 촬영한 8mm 필름)을 보면 결정타를 맞았을 때 케네디의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사격이 앞쪽에서 있었다는 거다. 영화의 끝부분, 법정에서 게리슨(케빈 코스트너)은 “뒤로, 왼쪽으로 (쓰러집니다)”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러나 저프루더 필름을 한 프레임씩 보면 맞는 순간 케네디의 머리가 앞으로 튕기는 한 프레임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뒤로 젖혀지는 건 첫 충격 후 ‘제트 효과’ 혹은 ‘신경근 반응’에 의한 것이었다. 피격이 뒤에서 있었다는 건 전문가 패널의 압도적 다수가 인정하는 사항이다.

워런 위원회의 조사가 끝이 아니었다. 1968년에 법무부가 부검 자료를 재검토했고, 1975년에 록펠러 위원회가 CIA의 여러 불법적 행태를 조사했으며, 같은 해에 의회가 사건 당시 FBI가 제대로 일했는지 조사했고, 1975~1976년에는 상원 처치 위원회가 CIA와 FBI를 조사했다. 1976~1979년에는 하원 특별위원회가 케네디 암살 사건을 전반적으로 다시 들여다봤다. 여기서는 제2의 저격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냈으나 몇 년 후 오류로 밝혀졌다. 그 외 음모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확인된 게 없었다.

영화 ‘JFK’는 이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뭐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대신 평판이 좋지만은 않은 한 검사와 한 대중작가가 쓴 책들에 의존했다. 미국 CBS 방송의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한 유명 영화평론가에게 그 영화에는 단 한 조각의 진실도 없다고 말한 적 있다.

영화적으로 매우 뛰어나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 좋은 배우들도 많이 출연한다. 특히 오스월드 역의 게리 올드먼이 흡인력이 있다. 촬영과 편집도 현란하다. 현재와 과거, 기록 영상과 재연 영상, 흑백과 컬러, 거친 화면과 깨끗한 화면 등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그런데 보통 영화에서는 어떤 일관성이 있다. 가령 흑백은 과거, 컬러는 현재 (혹은 그 반대) 그런 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런 규칙성이 안 보인다. 좋게 말하면 실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마구잡이다. 팩트에 대한 존중이 안 느껴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거 같다.

이 영화가 기여한 바가 있긴 하다. 이 영화가 촉발한 여론 덕분에 원래 2029년까지 봉인 예정이던 하원 특별위원회의 내부 자료 등 수많은 문건이 앞당겨 공개되었다. 물론 영화가 암시한 거대한 음모를 입증하는 건 전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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