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응급실 지키는 의사들을 위한 제언

입력 2026-11-05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제도적 뒷받침 없는 선의 오래못가
사명감으론 상실감 대체하지 못해
보상과 존중받는 문화 함께 갖춰야

1970년대 미국의 경영학자 스티븐 커는 많은 기업에서 ‘B를 바라면서 A를 보상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예컨대 보험회사는 보험금 심사가 정확하기를 바라지만 과소 지급에 대한 항의가 직원들의 성과에 영향을 주게 되면 직원들은 애매한 청구를 넉넉하게 지급하게 되고, 이는 보험회사가 원하지 않는 재무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커는 이럴 때 자기 일을 회사의 기대대로 처리하지 않는 사람을 탓하기보다 이런 제도와 관행을 만든 경영자에게 잘못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하였다. 이 논문은 사회 전반의 많은 현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면서 경영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프랑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곳곳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위를 보며 이 논문이 떠올랐다. 지나친 복지 때문, 연금개혁의 실패로 인한 재정적자 때문, 디지털 시대 성장동력을 잃었기 때문 등 다양한 원인에 대한 분석이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 개인의 선의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근거가 부족한 낙관이 이 문제의 기저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태의 발단은 파리 외곽지역의 생텍쥐페리, 바로 그 ‘어린 왕자’의 작가 이름을 딴 고등학교로 알려져 있다. 교사 자리가 비어 교사들이 파업했고 학생들이 합류했다. 선생님을 보내 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청이었다. 그런데 왜 자리가 비었을까. 파리 외곽은 학생이 늘어난 만큼 교사가 늘지 않았고, 파리 시내는 학생이 줄어든 만큼 교사가 줄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 외곽 학교들은 교사들이 기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경력 점수가 쌓일수록 원하는 지역으로 옮기기 유리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떠나려는 교사가 더 많을 수 있다. 힘든 학교를 떠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 선택들의 결과로, 공교육이 가장 필요한 학생들의 교육 요구는 충족되지 못하게 되었다.

최근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이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은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모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응급실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니, 우리나라 소아응급의의 현실을 모른다면 더더욱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 역시 이러한 마음을 고려해서 압수수색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이 센터 전문의 9명 중 7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뒤늦게 응급실 수사 지침 마련에 나섰다. 안 그래도 소아응급을 비롯한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의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은 K-문화의 수혜를 누리며 관광객을 상대로 큰돈을 버는 상황에서 아이를 살리려던 의사가 피의자 취급을 받는다면, 우리는 소아응급실을 지키는 행동이 아니라 떠나는 행동을 보상하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 마을버스를 탔을 때 일이다. 노약자석에는 여중생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임산부가 앉아 있었는데, 어르신이 타자 결국 임산부가 자리를 양보하고 서게 되는 걸 보았다. 정작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은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자리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생기면서,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양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가 된 것 같다. 제도가 정해 준 만큼만 배려하면 된다는 것이다. 제도에는 이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제도와 보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커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동기 이론의 흐름을 이렇게 정리했다. 프레더릭 테일러는 돈과 같은 외적 보상을, 프레더릭 허즈버그는 일 자체에서 오는 내적 동기를 중시했지만, 자신은 둘이 함께 작동하는 상황에 주목했다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한 대가도 받는 환경을 왜 만들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사명감으로 소아응급실을 지키는 의사에게 필요한 것도 둘 중 하나가 아니다. 그 일에 걸맞은 대가와, 그 일을 존중하는 사회의 시선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전략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실행이 중요하고, 실행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방식, 곧 문화라는 말을 하게 된다. 조직이 구성원의 협력을 이끌어 내려면 그들의 선의에 기대기보다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 그들이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직업이 사회에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프랑스 교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분의 1인 7%에 불과했다고 한다. 우리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들은 사회에서 존중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상하고 있는가?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美 중간선거 블루 쓰나미에 파랗게 질린 국내 증시, 5%대 폭락
  • ‘민주당 양원 장악’ 반전 셈법…美 관세 부담 속 데이터센터 규제 변수
  • 유예로 번 시간, 무엇을 바꾸나⋯코인 과세 ‘실전 검증’ 남았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
  • 단독 딘 베이커 “韓에 광범위 관세 부과할 의원 드물어”⋯트럼프 관세 불확실성 커진다
  • 경상수지 사상 첫 600억달러 벽 넘었다⋯9월 614억6000만달러 흑자
  • 트럼프 “나 탄핵하면 민주당 파멸시킬 것”
  • 뉴욕증시, 중간선거 랠리⋯유가, 이란전 종식 기대로 급락
  • 엔비디아 칩 사도 꽂을 전기가 없네...몸값 뛰는 '맞춤형 칩·전력기기株'
  • 오늘의 상승종목

  • 11.05 장종료

Web3 레이더

  • 주목 펀딩
    • 1 Ripple $500M
    • 2 Kalshi $1B
    • 3 V12 Seed $10M
    • 4 Morpho $175M
  • 인기 프로젝트
    • 1 LayerAI Infra 인기지수 302
    • 2 MLX DePIN 인기지수 287
    • 3 Clanker MEME 인기지수 276
    • 4 Elysium 인기지수 259
  • 토큰 언락 임박
    • HumidiFi 유통량 113% D-34
    • Allora 유통량 89% D-6
    • DAOBase 유통량 43% D-13
    • FLock 유통량 41% D-25
Source f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