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리언셀러에 대형 공연장 입성까지. 이제 가요계에서 버추얼 아이돌의 이름을 찾는 건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룹 플레이브(PLAVE)가 대표적이죠. 새 앨범이 얼마나 팔렸는지, 다음 공연은 어디서 열리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모습도 여느 인기 아이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로 생기는 버추얼 시상식의 명단은 가요 시상식보다 조금 더 폭넓습니다. 내년 2월 열리는 '제1회 버추얼 아이콘 어워즈'는 아이돌뿐 아니라 스트리머와 캐릭터, 제작자에게도 상을 주는데요. 같은 '버추얼'로 불려도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방송으로 팬을 모으고 있는 겁니다. 활동 무대도, 사랑받는 이유도 다른 이들의 성과를 어떻게 조명할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죠.
버추얼 아이돌의 상업적 성과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플레이브입니다. 플레이브는 신보를 낼 때마다 판매 기록을 높이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해왔는데요.
소속사 블래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발매된 플레이브의 미니 5집 '하이퍼드라이브(HYPERDRIVE)'는 한터차트 기준 초동(발매 후 일주일간 앨범 판매량) 132만2973장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4월 미니 4집 '칼리고 파트 2(Caligo Pt.2)'로 기록한 125만 장을 넘어선 자체 최고 성적인데요. 지난해 미니 3집 '칼리고 파트 1(Caligo Pt.1)'으로 처음 초동 100만 장을 돌파한 뒤 밀리언셀러 행진을 이어가고 있죠.
공연장도 커졌습니다. 지난해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한 플레이브는 올해 9월 12~13일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첫 월드투어 '킵 잇 매닉(KEEP IT MANIC)'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국내 스타디움으로 무대를 넓힌 데 이어 해외 각지를 찾으며 팬들을 만납니다.
지난달엔 새로운 버추얼 그룹 비더후드(B THE HOOD)가 첫 미니 앨범 '더 리얼 딜(THE REAL DEAL)'을 발매하고 데뷔했습니다. 타이틀곡 '찹!(CHOP!)'은 지난달 31일 기준 유튜브 인기 뮤직비디오 일간 차트 8위를 기록했고요.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집계된 주간 차트에서도 인기 뮤직비디오 18위, 주간 음원 차트 7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식 데뷔 전에는 미국 가죽 의류 브랜드와 스타일링 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크리에이터 '빠더너스(BDNS)'와 이색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죠.
이들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온라인에서 얻은 관심을 소비할 창구가 다양해졌다는 겁니다. '버추얼'이라는 공통된 외형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팬을 모으고, 음반과 공연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 현재의 변화를 보여주죠.

활동 무대가 넓어진 버추얼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서 조명하는 시상식도 등장했습니다.
한국버추얼휴먼산업협회는 내년 2월 27~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제1회 버추얼 아이콘 어워즈'를 개최한다고 밝혔는데요. 버추얼 아이돌과 스트리머, 캐릭터, 제작자 등 4개 부문에서 총 20개 상을 수여합니다. 각 분야의 성과를 조명하고 아이돌·스트리머·캐릭터 부문 대상 수상자 가운데 최종 수상자를 선정해 '버추얼 아이콘 대상'을 수여하는 방식입니다.
눈에 띄는 건 시상 범위인데요. 음악 활동을 하는 아이돌만 모으는 행사가 아니라 실시간 방송으로 시청자를 만나는 스트리머와 캐릭터,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까지 포함했습니다. '누가 노래를 잘하고 앨범을 많이 팔았나'를 넘어 버추얼 콘텐츠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를 함께 조명하겠다는 구성입니다.
후보 명단에서도 이런 특징이 드러납니다. 플레이브와 이세계아이돌 같은 그룹뿐 아니라 오위스(OWIS), 헤비(Hebi), 고세구 등이 이름을 올렸는데요. 특히 이세계아이돌 멤버인 고세구는 그룹의 음악 활동과 개인 방송을 병행하는 인물입니다.
같은 버추얼이라도 주력 콘텐츠와 수익 구조는 다릅니다. 음악 활동 중심의 아이돌이 앨범과 공연을 주요 사업으로 삼는다면, 방송 중심의 스트리머는 구독·후원·광고 등을 주요 수익원으로 활용하는데요. 이세계아이돌처럼 개인 방송과 그룹의 음악 활동을 병행하거나, 상품 판매와 브랜드 협업으로 사업을 넓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활동 영역이 겹치면서도 사업의 중심은 다른 만큼 음반 판매량이나 방송 시청 지표 어느 하나만으로 성과를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캐릭터와 제작자를 별도 부문으로 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아티스트의 인기뿐 아니라 캐릭터 자체와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제작 주체까지 시상 대상으로 넓혔기 때문인데요. 음악과 방송을 통해 팬을 만나는 이들, 그 활동의 기반을 만드는 이들을 하나의 행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이번 시상식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팬들도 수상자 선정에 참여합니다. 이달 2일 시작된 본투표는 아이돌·스트리머 부문의 대상과 라이징상, 팬초이스상 등 6개 상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요. 온라인 본투표는 세 차례 라운드를 거쳐 내년 2월 12일까지 이어집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온 버추얼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모은 만큼 이들의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도 관심이 높아지죠.

플레이브의 경쟁 상대는 다른 버추얼 아이돌만이 아닙니다. 같은 시기 신보를 내는 K팝 가수들과 다를 바 없이 음원·음반 차트에서 경쟁하는데요. 스트리머 역시 버추얼 여부와는 상관없이 같은 플랫폼의 여러 방송 사이에서 시청자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전용 시상식은 각 시장에 흩어져 있던 이들의 성과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음반과 공연에서 두각을 나타낸 아이돌뿐 아니라 방송과 캐릭터, 제작 분야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가요 시상식과 범위가 다른데요. 버추얼을 아이돌 중심으로 바라볼 때 드러나지 않았던 활동까지 함께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에 캐릭터와 제작자 부문의 수상 결과에도 눈길이 쏠립니다. 아이돌과 스트리머의 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제작 주체와 작업을 소개할 기회이기 때문인데요. 캐릭터와 제작 부문의 구체적인 성과를 조명하면 개별 아티스트의 흥행에 집중됐던 관심을 콘텐츠 개발과 제작 역량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됩니다.
'버추얼 아이콘 대상'의 선정 결과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아이돌·스트리머·캐릭터 부문 대상 가운데 최종 수상자를 뽑는 만큼 그 선정 이유는 서로 다른 분야의 성과를 어떤 관점에서 비교했는지 보여줄 전망이죠.
플레이브의 성과만으로 버추얼 산업 전반의 성장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 기준으로는 물론, 가요계에서도 이례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는 팀이기 때문이죠. 이번 시상식에서 주목할 것도 플레이브 외의 아티스트와 다른 분야에서 어떤 성과가 확인되는지인데요. 캐릭터와 제작 부문의 후보·수상 사례는 인기 아티스트의 흥행에 가려졌던 콘텐츠와 제작 주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수상자의 인지도만큼 수상 사유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