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벌거벗은 생명으로 태어나 사회라는 장 안에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 여러 계급으로 나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드외는 인간은 경제, 문화, 사회, 신체, 심리 같은 상징 재화의 유무와 그 총량에 따라 저마다의 아비투스(Habitus)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른바 구별짓기다. 인맥과 학벌 같은 상징 자본이 없던 내 아버지는 최하의 생존 조건에서 허덕거렸을 테다.
자원과 기회의 부족보다 영혼의 빈곤에서 가난의 뼈저림은 더 참담하다. 가난이란 난관에 속수무책으로 빠질 때 인간은 발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물어뜯는다. 세속 가정 안에서 인간을 비루함에 빠트리고 야수의 심장을 갖게 하는 가난의 드라마는 끔찍하다. 가난이란 드라마의 중심에서 인간이란 제 타락을 환멸하면서 추락하는 신이란 걸 나는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창경궁의 벽과 등을 맞댄 벌집 구조의 주택에서 가난한 열일곱 세대가 복작대며 살았다. 그 집에서 살 때 아버지와 격렬한 언쟁을 하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밤을 새우고 새벽녘에 나왔다. 그 가출로 나는 정규교육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하필 그날은 한파로 기온이 영항 17도로 떨어진 날이었다. 쇠붙이 문고리를 잡자마자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막상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었다. 환경미화원들이 드럼통 장작불을 둘러싼 채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나는 새벽 거리를 헤매다가 지하철을 탔다. 방한복을 입은 승객들 사이에서 졸다가 지하철 종착역에서 내렸다. 인천의 시장통 골목으로 들어서서 돌아다니다가 뼛속까지 밀려오는 혹한을 피하느라 목욕탕을 들어갔다. 온탕에서 언 몸을 녹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실업계 고교를 중퇴한 뒤 아침마다 시립도서관을 찾아갔다. 스무 살 무렵 자립해서 중학생 가정교사를 하며 시립도서관 구석진 자리에서 독학으로 시를 쓰고 철학 공부를 했다. 나는 백수 상태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잡은 채 세월을 흘려보냈다. 스물세 살 가을에 쓴 시와 문학평론이 일간지 신춘문예 공모에 당선되었다. 이듬해 출판사에 입사해 출판 일을 익힌 뒤 출판사 창업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자력갱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내가 지나온 반세기는 한마디로 급류였다. 그 급류에서 나는 용케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음은 그 자체로 뿌듯한 업적이자 위대한 승리였다. 나는 평생 전업작가, 출판편집자, 대학강사, 방송진행자, 자유기고가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왔다. 지중해와 알제리의 대지가 건네는 지복 속에서 어머니가 모든 정의의 총합보다 더 위대하는 것, 제가 겪은 가난을 사치와 등치시키는 의연함을 보여준 알베르 카뮈에 견주자면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단한 업적도 없이 여전히 읽고 쓰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싶진 않다. 이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산이 가난이었지만 그 한계에서 최선을 다한 것, 내가 거둔 소박한 보람과 열매마저 뜻 없다고 매정하게 내칠 수는 없다. 어깨를 조용히 두드리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쯤 해주고 싶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문득 스무 해 전 세상을 뜬 아버지를 떠올렸고, 내가 걸어온 세월을 감상에 젖은 채 더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