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평가를 받는 곳은 이들 88개 기관뿐이 아니다. 재정경제부가 2026년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기관은 342개에 이른다. 재경부의 경영평가 대상이 아닌 기관들도 주무부처 등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공공기관이 받는 평가가 경영평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를 비롯해 종합청렴도평가, 정보공개종합평가, 안전관리등급심사, 개인정보보호수준평가, 재난관리평가, 온실가스감축실적평가 등 수십 가지 평가와 점검을 받는다.
평가는 필요하다. 공공기관은 공적 재원을 써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정치인과 달리 선거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공기관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이 정부를 이끌고, 정부는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의 성과목표를 정한 뒤 그 달성 여부를 따진다. 이렇게 국민에게서 시작된 민주적 통제가 정치인과 행정부를 거쳐 공공기관까지 이어진다. ‘위로부터의 민주주의(overhead democracy)’가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에도 비용이 따른다. 정부는 기관의 업무를 살피는 감시 비용을, 기관은 자신이 제대로 일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비용을 치른다. 성과를 높이는 게 확실한 비용이라면 감수할 만하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다. 평가 점수를 높이려고 정부 정책에 맞춰 조직명만 바꾸거나 보여주기식 행사를 열기도 한다. 평가에 대응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칠 수도 있다. 평가의 홍수 속에서 기관들은 각종 평가의 세부 평가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경영평가의 취지는 재량을 보장하되 그 결과에 책임을 묻는 데 있다. 우리 경영평가의 출발도 그랬다. 1983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정부는 공공기관의 재량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대신 그 결과를 경영실적평가로 따지기로 했다. 행정학의 태동을 알린 학자이자 훗날 미국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도 1887년 “큰 권한과 방해받지 않는 재량이 책임의 필수 조건”이라고 했다. 재량이 있어야 그에 따른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는 오히려 재량을 줄이고 있지 않을까. 스포츠를 떠올려 보자. 기본 규칙을 정하고 심판을 두되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승패를 가리고 보상이 따르면 기록 경신을 향한 도전도 이어진다. 반대로 채점 기준이 지나치게 세세하면 선수들은 득점에 유리한 기술에만 매달리기 쉽다. 한때 태권도에서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전자호구 도입 이후 득점 센서에 발끝을 갖다 대는 데 치중하자 ‘재미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경영평가 개선은 중차대한 과제다. 공공기관의 사업 규모는 2025년 결산 기준 824조8000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정부 총지출의 약 1.2배다. 전력과 철도, 주택과 연금, 보건과 고용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마침 개정 공공기관운영법으로 평가 권한을 넘겨받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활동이 시작됐다. 경영평가 개선을 모색한다면, 재량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경영평가는 공공기관이 마음껏 뛰게 하는 운동장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