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로봇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제조 강국이다. 2024년 제조업 근로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은 1220대, 세계 평균의 9.2배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동화 강국이라는 위상이 AI 전환(AX) 경쟁력을 보장하진 않는다.
누구보다 유리한 '피지컬 AI의 학습장'임에도 중소기업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장 보유 제조기업 16만개 중 제조 AI 도입률은 0.1%에 그치고, 도입 계획은 1.6%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스마트공장 도입률도 18.6%뿐이다. 그나마 도입한 기업의 75.5%는 기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GIST) AI정책전략대학원장은 최근 중소기업계 한 포럼에서 "명장의 손끝 감각, 불량 판정 기준, 최적의 조건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은 채 사람과 함께 은퇴한다. 피지컬 AI가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데이터(암묵지)가 가장 빨리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에 혁신을 재촉하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노후 설비와 부족한 전문인력과 자금력, 불확실한 투자 효과, 데이터 추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생산라인을 멈췄다가 실패하면 손실은 기업의 몫이 된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이 "사장님의 계산은 숫자보다 복잡하다"고 짚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이를 유지하는 것도 중소기업엔 짐이다.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조기업 105곳을 조사한 결과, 50인 미만 기업의 71.1%는 스마트공장 유지보수가 초기에만 이뤄졌거나 전혀 없었다고 진단했다. 100인 이상 기업은 13.6%였다. 구축 실적을 쌓는 동안 사후관리나 운영 인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과 달리 중소기업의 AX는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다. 청년은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창업 1세대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무섭게 벌어지는 대기업과의 격차도 매서운 현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청년층 열악한 근무환경·조직문화(52.3%), 낮은 임금(49.8%), 경력·성장 가능성의 불확실성(36.4%) 등으로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한다. 인력난은 단순한 채용 부족을 넘어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경영자의 고령화도 가파르다. 2024년 기준 60세 이상 경영자는 33.3%로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뿌리산업과 지역 제조업에서는 창업주나 숙련공이 떠나면 가공 조건과 불량 판정의 감각, 거래처 관리 방식까지 함께 사라진다. AX를 단순히 인력을 대체하는 게 아닌 기술과 경험의 승계로 봐야 하는 까닭이다.
정부는 2027년 예산안에 제조 암묵지 활용 AI 솔루션 개발 2900억원을 투입한다.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 구축에도 1158억원을 편성했다. 다만 이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해법은 기업이 비용과 위험을 각각 짊어지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업종별로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실증과 전문인력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꼽힌다. 실증 후 유지보수와 재교육도 지원해 개별적인 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업의 데이터 활용 권한과 보상을 명확히 할 필요성도 있다.
중국은 중소기업까지 활용하는 제조 AI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아 국내 기업의 경쟁 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중소기업 AX 확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다만 경쟁에 쫓겨 보급 실적만 늘려선 안 된다.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숙련 기술을 다음 세대로 연결하는 게 핵심이다. 중소기업 AX의 성적표는 도입 기업 수가 아니라 경쟁력과 기술을 지켜낸 기업의 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