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리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까. 한국은행이 잠재성장률과 함께 재산정 중인 '중립금리'가 신현송 총재의 입을 통해 수차례 언급되면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성과 맞물려 시장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와 AI 호황이 일시적인 수출 호조를 넘어 기업 이익과 설비투자, 자본 축적,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며 한국 경제의 장기 균형 경로를 바꾸고 물가 안정에 필요한 금리 기준점도 끌어올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신 총재는 지난 주 태국 방콕에서 진행된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과의 대담에서 AI가 중립금리(자연이자율, R*)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국은 AI 공급망 중심에 있고 확대된 투자와 자금 조달 수요가 장기금리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AI로 인해 중립금리가 상승할 것인지는 흥미로운 질문"이라며 "표준 모형에서는 경제성장과 중립금리가 동반 상승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 총재의 이 같은 시각은 취임 초였던 6월 한국금융학회 정책심포지엄 만찬 기조연설 내용과도 궤를 같이한다. 당시 그는 "AI가 장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지금까지 거시경제학에서 법칙처럼 받아들여졌던 생산성과 성장률, 중립금리와 같은 문제가 바뀔 가능성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중립금리란 경제가 과열되거나 침체하지 않고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금리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의 긴축·완화 정도를 가늠하는 핵심 나침반으로 꼽힌다. 한은은 이 지표를 내부적으로 산정하나 공표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에는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을 반영해 재추정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나라 명목 중립금리는 2% 중반대 수준으로 추정된다. 자본시장연구원 역시 올해 연평균 명목 중립금리를 2.5% 내외로 관측한 바 있다. 신 총재도 지난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은 조사국의 여러 계량 모델로 추정한 결과 명목 중립금리 중간값은 2%대 중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에 참석한 박종우 부총재보 또한 "현 기준금리(3.00%)는 중립금리 상단에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중립금리의 구조적 상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은 최근 AI 혁신과 가파른 명목성장률이 꼽힌다.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6.4% 급증하는 등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교역조건 개선이 경제 체질과 체감 소득을 끌어올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은 조사국은 이번 재추정 작업에서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등 인구구조 요인뿐 아니라, AI 도입에 따른 설비투자 확대와 생산성 제고가 균형 금리를 얼마나 밀어 올릴 수 있는지를 집중 계량화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안팎에서는 한은의 이번 중립금리 재추정 결과가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를 제어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지침)’ 역할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신 총재의 중간값 언급 등을 감안하면 신규 추정치는 2024년 발표된 수치(하단 기준 1.8%)보다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이는 향후 피벗을 통해 금리 인하 사이클이 본격화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초저금리 유동성 파티로 복귀할 구조적 토대가 사라졌음을 시사한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는 단순한 반도체발 경기 회복을 넘어 성장률·잠재성장률·중립금리의 균형점이 함께 높아질 가능성을 시험할 것"이라며 지난달 최종금리 전망을 3.25%에서 3.5%로 높여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