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ㆍ이란전쟁 겹친 아시아⋯식량위기 경고등

입력 2026-10-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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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 정점 앞두고 인도 몬순 강수량 10년 만에 최저
이란전쟁발 연료ㆍ비료난 겹쳐 식량물가 상승 압력
스리랑카ㆍ방글라데시ㆍ캄보디아 충격 취약
사전 대응 1달러가 피해ㆍ구호비 최대 7달러 줄여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주 팔랑카라야에서 산불 연무가 일대를 뒤덮은 가운데 주민들이 보호마스크를 쓰고 있다. (팔랑카라야(인도네시아)/로이터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주 팔랑카라야에서 산불 연무가 일대를 뒤덮은 가운데 주민들이 보호마스크를 쓰고 있다. (팔랑카라야(인도네시아)/로이터연합뉴스)
엘니뇨가 아시아의 쌀 생산을 위협하는 가운데 이란전쟁발 에너지·비료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식량 충격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업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국은 농가 소득 감소와 식품 물가 상승을 동시에 겪을 수 있다. 각국 정부가 곡물 비축과 재난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엘니뇨가 아시아의 농업과 식량 공급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엘니뇨는 태평양 해수면 온도와 대기 흐름이 변하면서 세계 곳곳의 기온·강수 패턴에 영향을 주는 자연 현상이다. 이번 엘니뇨는 지난 5월 시작돼 다음 달 정점에 이른 뒤 내년 2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세계기상기구(WMO)는 전망했다.

아시아 곳곳에서는 이미 가뭄과 산불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연간 강수량의 약 70%를 공급하는 몬순 강수량이 평년보다 13% 적어 10년 만에 가장 건조한 우기가 됐다. 인도네시아는 위성자료상 11년 만에 최악의 산불철을 겪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7개 주가 이미 가뭄을 겪고 있으며, 내년 초에는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식량 생산에서 나타날 전망이다. 빗물에 의존하는 농가가 특히 취약한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엘니뇨 정점 시기인 10~12월 주식인 쌀을 파종한다. 관개 농지도 안전하지 않다. 강수량 부족으로 저수지가 마르면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태국 중부에서는 저수량 감소에 정부가 농민들에게 올해 2기작 벼농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농가 부담은 전쟁발 공급 충격으로 더 커졌다. 이란전쟁으로 연료와 비료 공급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세계은행은 올해 비료 가격이 지난해보다 평균 38%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인도의 연간 식품 물가 상승률은 1월 2.1%에서 8월 6%로 뛰었고, 스리랑카는 9월 7%를 기록했다. 태국 크룽타이은행은 태국의 쌀 생산량이 내년 중반까지 18%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방글라데시의 쌀 재고는 연간 소비량의 4%에도 못 미친다.

이코노미스트가 아시아 신흥국 11곳의 농업 의존도와 곡물 재고, 정부 부채, 복지제도 등을 종합해 취약성을 분석한 결과 스리랑카ㆍ방글라데시ㆍ캄보디아가 충격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혔다. 미얀마는 자료가 부족해 분석에서 빠졌지만 내전 상황을 고려하면 가장 취약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인도에서는 농민이, 필리핀과 방글라데시에서는 소비자가 피해를 더 크게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엘니뇨는 식량뿐 아니라 에너지와 보건에도 부담을 준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강 수위가 낮아지면 수력발전이 줄고 더위로 냉방 수요가 늘면서 각국이 석탄 발전을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네시아 산불 연기는 동남아시아 대기질을 악화시켰고 싱가포르의 대기오염 수준은 12일 세계에서 가장 나쁜 수준으로 평가됐다.

각국 정부가 충격을 흡수하기도 쉽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1997년 엘니뇨가 이후 5년간 세계 경제에 약 6조달러(약 8066조원)의 손실을 안겼으며 아시아가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다고 전했다. 유엔은 식량·에너지 가격 충격이 보조금 등 정부 지원 없이 가계에 고스란히 전가될 경우 전 세계 빈곤 인구가 1억3200만명 늘고, 이 가운데 9100만명이 아시아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각국 정부의 부채가 불어나 대응 여력이 제한되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다만 이번에는 위기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각국은 쌀 비축을 늘리고 농가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도는 가뭄이 심한 지역의 농민에게 콩 등 다른 작물 재배를 유도하고 필리핀은 가뭄에 강한 종자를 나눠주고 있다. ADB의 로셴 페르난도는 재난이 발생한 뒤 지원금을 푸는 데 그치지 말고, 엘니뇨 대응 예산과 긴급 신용대출·재난보험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보가 정해진 기준을 넘으면 현금이나 물자를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예측 기반 대응’도 대안으로 꼽힌다. 유엔은 이런 사전 대응에 투입한 1달러가 최대 7달러의 피해와 사후 구호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재원 부족 등으로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6월 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ㆍ필리핀 등 22개국 880만명을 보호하기 위해 2억200만달러를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모인 돈은 4000만달러에 그쳤다.

이코노미스트는 100여 년 전 강력한 엘니뇨가 인도와 중국 등에서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근으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당시와 달리 지금의 아시아는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할 능력을 갖췄지만, 예보가 실제 지원과 예방 조치로 이어져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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