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일곱에 역대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이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대변인이었던 레빗은 이렇게 종종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을 반격의 기회로 바꿨다.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라며 원색적 비난과 조롱으로 질문 자체를 깎아내리며 주도권을 쥐기도 했다. 젊은 나이가 무색하게 어떤 질문에도 노련하게 말을 쏟아내며 응수했다. 이런 그의 입술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관총처럼 움직인다’고 빗대기도 했다.
그런 그가 8월 27일(현지시간) 자로 백악관을 떠났다. 5월 둘째 자녀를 낳기 위해 출산휴가에 들어갔다가 복귀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과 엄마 역할의 양립 어려움을 이유로 ‘트럼프의 입’ 역할을 내려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레빗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워킹맘이 두 살배기 아들과 생후 반년도 되지 않은 딸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의외로 느껴지는 것은 사임한 지 두 달여 만인 내달 1일부터 폭스뉴스에서 활동을 재개한다는 것이다. 방송 출연 기고자로 합류한다고 한다. 방송 복귀만으로 육아를 위한 사임이 핑계였다고 볼 수는 없다. 또 대통령의 발언을 수시로 대변해야 하는 자리와 방송에서 논평하는 자리의 부담은 다르다는 것도 이해한다. 레빗의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도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도 여전히 레빗을 신임한다. 이를 보여주듯 백악관은 레빗의 퇴임 소식과 함께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레빗이 트럼프에 적대적인 언론인·외국 정치인·민주당의 공격에 한 번도 고개를 숙이는 일 없이 당당하게 맞대응해 결국 물리쳤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외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 것과 대통령의 모순을 감당하는 것은 별개다. ‘말발’로 유명한 레빗에게 더 까다로운 상대는 기자의 질문보다 대통령의 말 바꾸기 아니었을까. 트럼프는 희망을 사실로, 실패를 성과로, 협의를 합의로, 번복을 전략으로, 포장하는 화법이 일상인 리더다.
사임의 표면적 이유와 별개로 폭주하는 트럼프의 발언들을 수습하기에는 천하의 레빗도 한계에 부딪힌 건 아닐까. 대통령을 대변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지기 전에 박수받을 시점에 물러나는 출구전략을 택했다면 꽤나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에도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500억달러(약 67조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한국 당국이 여러 차례 반박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희망 사항을 기정사실로 발표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의 수법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를 지원할 성과가 필요하다고 동맹의 투자 결정까지 거짓으로 어필하는 것을 레빗이라고 납득 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한 달여간 공석이었던 백악관 대변인 자리에 보수 성향 방송평론가 케이티 자카리아를 발탁했다고 알렸다. 후임에게 필요한 능력이 끝없는 수습이어서는 곤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