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까지 미루며 매달린 추경 협상이 100일 당일 결렬됐다.
경기도의회는 8일 오전 민생예산 복원 요구액을 200억 원까지 낮춘 마지막 절충안을 내밀었지만 경기도의 답은 '수용 불가'였다.
도의회는 12일 오전 11시 원포인트 임시회 본회의에 50여개 사업, 420억 원을 복원하는 수정안을 올린다.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도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안광률 대표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행부의 재정적 어려움과 입장을 고려해 수정안의 절반 수준인 200억원까지 조정하는 안을 오늘 아침 제시했는데 집행부 답변은 또다시 '수용 불가'였다"며 "더 이상 협상을 위해 시간을 끌 수 없어 민생예산을 지키기 위한 수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본회의 일정은 남종섭 의장과 협의를 마쳤다.
경기도는 7일 오전 10시30분으로 잡혀 있던 추 지사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연기하며 "현재 추가경정예산이 처리되지 못한 엄중한 상황에서 모든 역량을 추경안 처리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견 연기를 발표한 지 사흘 만에 협상 테이블이 깨졌다.
경기도가 5465억원을 감액한 42조2420억원 규모의 제2회 추경안을 도의회에 낸 것은 8월19일이다. 추경안은 9월18일 제393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고, 추석 전 처리도 무산됐다. 제출 50일 만에 협상은 표결로 방향을 틀었다.
그사이 도의회 요구액은 숫자를 바꿔가며 내려왔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뒤 내놓은 1차 수정안 800억원을 도가 거부하자 500억원으로 낮췄고, 9월23일에는 320억원까지 줄였다. 사업을 다시 추린 10월1일 안은 300억~400억원대였다. 예결위 소위원회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한 최종 수정안은 50여개 사업 420억원이고, 8일 오전 내민 200억원은 이를 절반으로 깎은 절충안이었다.
△도의 선은 '4개 사업 89억'…어린이집·통큰 세일·생리용품은 제외
경기도가 받아들인 사업은 산후조리비 지원(36억원), 어린이 건강과일 공급(15억원), 교통약자 이동 지원(23억원), 법인택시 운수종사자 처우개선(14억원) 등 4개, 89억원이다. 그 밖의 복원은 어렵다는 입장은 끝까지 그대로였다.
접점을 찾지 못한 사업은 어린이집 교사 처우개선 운영비, 소상공인 통큰세일,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원 미편성 예산 등이다. 민주당은 "무분별한 예산 증액을 요구한 것도, 모든 삭감 예산의 원상복구를 주장한 것도 아니다"라며 "의회가 4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면, 집행부 역시 도민을 위해 한 걸음 다가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 의장이 낸 중재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민주당 설명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날 따로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과녁은 하나였다. 민주당은 "경기도의회는 집행부의 거수기가 아니다"라며 "재정건전성은 도민 삶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도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포기하기 위한 명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당 도지사를 압박한다는 지적에 안 대표의원은 "많은 도민께서 지금 추미애 지사의 도정 운영을 잘한다고 평가하고 계신지 되묻고 싶다"며 "같은 당의 지사이기 때문에 더 큰 쓴소리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맞받았다.
국민의힘은 수위를 더 높였다. 도의회 3층 브리핑룸에 '도민과 소통하고 민생예산 즉각 반영하라'는 현수막을 건 국민의힘 의원들은 '최소한의 민생예산 적극 반영하라', '도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추미애 도정은 도민의 절박한 소통 요구를 철저히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산후조리비 삭감에 반발한 2만3000명의 온라인 청원과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의 사흘 연속 거리 집회,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의 규탄을 거론하며 "도의회 고유 권한인 심의·의결권을 지키고 무책임한 도정에 맞서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거리의 요구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기존 어린이집 운영지원 예산 반드시 유지하라', '경기도지사는 보육현장과 직접 소통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에 앉았다.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 등 소상공인 단체는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경기도 추경 편성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12일 본회의를 통과해도 수정안이 곧바로 집행되지는 않는다. 지방자치법 제142조 제3항은 지방의회가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용항목을 설치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도 제출안보다 늘어나는 항목마다 도지사 동의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경기도는 수정안이 통과되면 동의한 4개 사업 외 예산은 집행하지 않고 불용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결권은 도의회에, 집행권은 도에 있다. 12일 표결 뒤에도 집행을 둘러싼 2라운드가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경기도의 논리는 '쓸 돈이 없다'였다. 추 지사는 9월 22일 월간회의에서 도의회 증액 요구에 대해 "현재도 하루 이자만 3억8000만원씩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년에는 하루 이자가 4억9000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도의회 요구대로 지역개발기금을 끌어다 쓰면 상환 부담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이날 31개 시군에 공개한 수치에도 재정 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취득세 감소와 복지·국비 매칭부담 증가로 올해 가용재원은 일반회계의 9.8%인 3조5185억원에 그친다. 2027년 시군 보조사업에는 조례상 기준보조율 30%를 원칙으로 적용하고, 재정 취약 시군에는 차등보조율을 둔다.
도의회와 협상이 깨진 날, 추 지사는 시군에 고개를 숙였다. 경기도서관 플래닛 경기홀에서 열린 '도-시군 부단체장 회의'에 잠시 들러 "위기 상황에 대해 차분하게 양해를 구하고 설명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도지사로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시군과 상의해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추 지사는 이날 경기지역 민주당 국회의원 51명에게 친전을 보내 '지방세제 구조개편 3대 과제' 입법 협조를 요청했다. △지방소비세율 25.3%→40.3% 단계적 인상 △국세분 법인세 5%의 광역지방세 이양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 일부의 소방분 지역자원시설세 전환이다. 김태년 의원 등 18명이 관련 법률 개정안 6건 발의에 나섰고, 도는 정기국회에서 모두 통과되면 4년간 14조1000억원의 추가 재원 기반이 생길 것으로 본다.
추 지사는 친전에서 "현장을 살피고 도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가장 무겁게 다가온 문제가 경기도의 재정"이라며 "지방재정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회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추 지사의 100일 공식 일정은 기념행사가 아닌 판교였다.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스마트모빌리티 실증허브에서 교통혁신 4대 비전 'CARE'를 내놓고 2028년 고속도로 자율주행 광역버스 시험운행, 2029년 승객 탑승 실증 계획을 발표했다.
추 지사는 "지금까지는 도민이 정해진 버스노선과 운행시간에 맞춰 이동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교통체계가 도민의 이동 수요에 맞춰 스스로 움직이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한글날 연휴에도 도의회와 협상을 이어갈 방침이다. 도의회는 12일 오전 11시 본회의를 열고, 이튿날인 13일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