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의 추진 방향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여부나 관련 지침, 책임투자보고서 보유 등에 가점을 주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이제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의 실제 수탁자책임 활동을 질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자금의 추가 배정이나 회수에도 평가 결과를 연계할 계획이다. 스튜어드십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담당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중요한 운용 역량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 공적연기금 GPIF는 이미 한발 앞서 있다. 기업을 몇 번 만났는지보다 투자전략에 맞는 관여활동이었는지, 목표와 이정표가 있었는지, 기업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운용사의 관여활동을 투자대상기업 설문을 통해 기업의 시각에서도 확인한다는 것이다. 좋은 관여활동은 단순히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투자자의 장기적 관점과 기업의 경영 전문성이 만나 더 나은 기업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는 관여활동의 횟수보다 과정의 연결성이 더 중요하다. 어떤 이슈를 발견했고, 무엇을 목표로 대화했으며, 기업은 어떻게 대응했고,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하나의 밸류 스토리(Value Story), 즉 가치창출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기업 미팅 100번보다 목표와 후속조치, 결과가 분명한 10건의 사례가 운용사의 역량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활동을 기업가치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기업지배구조와 ESG 이슈가 매출, 비용, 투자지출, 리스크, 자본배분과 자본비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기업가치와 투자판단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스튜어드십의 ‘재무화’다.
다만 운용사에 책임만 더 요구해서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새로운 스튜어드십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먼저, 금융그룹이나 기업집단 계열 운용사가 존재하는 국내 시장에서는 이해상충을 통제하고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을 확보할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적극적 주주활동에는 전문인력, 리서치, 데이터, 법률검토 등 비용이 드는 만큼 적정한 전문펀드나 위탁보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셋째, 협력적 관여가 공동 의결권 행사 등으로 발전하는 경우 공동보유 판단이나 대량보유보고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관여활동이 불필요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명확한 세부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의결권 행사 관행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패시브·상장지수펀드(ETF) 운용이 확대될수록 개별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와 관여활동의 중요성도 커진다. 개별 펀드의 지분은 작아 보여도 기관투자자 전체가 기업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명백한 반대 사유가 있거나 기업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견제가 필요한 사안이라면, 지분 규모만을 이유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 손실은 결국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제 운용사도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최근 2~3년간의 관여활동과 의결권 행사는 평가 가능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 정책과 실제 활동, 내부 의사결정과 외부 공시는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는가. 투자기업의 변화가 투자판단과 연결되어 있는가. 정책, 프로세스, 활동, 서류와 증빙, 공시, 성과, 가치창출의 스튜어드십 밸류체인(Value Chain) 연결고리를 점검하고 끊어진 부분이나 불명확한 부분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제 질문은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입했는가?’가 아니다. “내일 위탁자가 실사를 온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스튜어드십 활동과 성과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가?”다. 상생의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는 선언이 아니라, 그 증거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