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심화시켜 증오심 자극할 뿐
여권의 값싼 선동행태 성찰 필요해

언어는 칼과 같다. 잘못 쓰면 남도 해치고 나도 다친다. 특히 시대 맥락에 맞지 않는 언어를 쓰면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자기에게도 화가 돌아올 수 있다. 근래 여권(與圈)의 유행어가 된 ‘내란’이라는 언어가 바로 그렇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의 소집을 방해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이라 불린다. 정말 내란이었는지 최종 사법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과거 독재 시절 계엄령 통치로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데다 친위 쿠데타로 볼만큼 과정이 갑작스럽고 어색했다는 점에서 내란이라고 불러도 상식상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와 함께 계엄령에 직접 관여한 측근들뿐 아니라 그를 두둔하는 야권 인사들을 싸잡아 내란 세력으로 몰고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과 여권을 비판하거나 국정 보조를 맞추지 않는 사람들까지 내란이란 언어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여권 정치인들은 대법관 제청 건으로 청와대에 각을 세운 조희대 대법원장마저 “희대의 난”을 일으켰다며 내란 동조자로 몰고 있다.
내란 낙인을 남발하는 건 반대편은 악(惡)이라는 피해의식과 적개심, 우리는 정의롭다는 자기최면, 반대편을 아예 궤멸시키고 우리 진영을 결집하겠다는 책략 때문이다. 그러나 내란이라는 언어는 함의가 묘해 그걸 쓰는 사람도 타격받을 수 있다. 내란은 절대군주 시대나 독재체제에서 지배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서, 누군가가 내란 세력을 운운한다면 그는 지배계층에 속해 권력에 매달리는 사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윤 전 대통령이 내건 ‘계몽’이 계급사회의 엘리트 관점을 반영한 단어인데, 그에 대항해 권력을 잡은 측도 ‘내 편’이 아닌 수많은 사람을 내란 세력이라고 비난하며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엘리트화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다.
이러면 민중을 대변해 새 질서를 세우겠다는 ‘진보’의 취지는 날아간다. 내란 세력이라고 낙인찍힌 진영과 낙인찍는 진영이 함께 지배계층 반열에 올라, 결국 내란 논쟁은 지배계층 내부의 당파 싸움으로 변질된다. 진보의 눈높이를 유지하려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적폐 청산’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낫다. 물론 국민 갈라치기 언어는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니 다 배격해야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현대의 시점에는 내란이 적폐보다도 더 시대착오적 언어란 것이다.
내란 낙인 남발은 내란의 의미를 정쟁화하고 모호하게 해서 진짜 내란범에 대한 사법 판단과 처벌을 훼방 놓을 수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극소수 측근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또한, 의미가 너무 넓어진 내란 개념은 나중에 정권 교체 시 부메랑이 돼 현 집권층을 겨냥할 수 있다. 대통령의 입장을 반대한다고 내란 세력으로 몬다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내란 진압의 명분으로 다칠 수밖에 없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을 내란 낙인 남발로 더 강화하는 자충수를 두고 싶은가.
우리 사회는 이미 양극화의 폐해를 앓고 있다. 소득, 성별, 세대, 출신지,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가 국민을 증오심과 상실감으로 경직된 진영주의 덫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마저 내란이란 자극적 언어로 양극적 이분화를 부추기고 있다. 정파적 자충수가 될 뿐만 아니라 국민까지 분열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데에 내란 낙인 남발의 심각함이 있다.
정치인은 자신을 값싼 선동가로 격하시켜선 곤란하다. 정치권의 온갖 추태를 봐온 국민 대부분도 이제는 그런 인물과 진정한 정치가를 구분할 수 있다. 정권을 잡아 국정을 주도하고 싶은 정치인이라면 언어를 조심해야 하고, 우선 내란이란 호전적이면서 엘리트주의적인 말부터 적절한 건지 반성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