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치유농업, 이제 과학에서 산업으로

입력 2026-09-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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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만성질환, 우울과 스트레스, 번아웃과 사회적 고립이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고 있다. 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 이후의 일상 복귀를 돕는 것은 물론, 몸과 마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농업의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 농업은 이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을 넘어 사람과 공동체의 ‘회복’을 돕는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농작업, 식물, 정원, 농촌환경 등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해 신체적·정서적·사회적 건강과 회복을 돕는 활동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을 중심으로 대상별 프로그램 개발, 효과 검증, 표준평가, 현장 실증 등 상당한 연구성과가 축적돼 왔다. 2025년 기준 약 30종의 대상별 프로그램이 개발됐으며, 국내 실험연구 1407건을 분석하는 성과도 거뒀다. 치유농업은 막연히 ‘좋은 경험’으로 인식되는 단계를 넘어, 그 효과를 과학적 근거로 설명하고 검증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연구성과 축적 … 국민 체감 끌어내야

이제 중요한 질문은, 과학으로 증명한 치유농업의 효과를 어떻게 국민이 체감하는 서비스와 산업으로 전환할 것인가이다. 그동안 연구개발(R&D)의 성과는 주로 논문과 특허, 프로그램 개발, 기술이전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기술이전은 연구의 끝이 아니라 산업화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연구 성과가 현장의 서비스로 구현되고, 기업과 농가가 활용하며,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과 일자리로 이어질 때 연구의 사회적 가치가 완성된다.

이를 위해 연구와 산업 사이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연결해야 한다. 연구 성과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축적된 성과를 현장·서비스·기업·시장으로 전환하는 체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공급자 중심의 R&D에서 벗어나 연구 기획 단계부터 국민과 농업인, 기업과 시장의 수요를 반영하는 R&I(Research & Innovation)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의 출발점은 신뢰다. 과학적 근거(evidence)가 신뢰(trust)를 만들고, 신뢰가 소비자의 선택과 시장(market)을 만들며, 시장이 산업의 성장을 이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축적해 온 연구성과는 단순한 논문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치유농업 산업의 ‘신뢰 인프라(trust infrastructure)’이다.

여기에 AI와 힐링테크를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 센서와 웨어러블로 개인의 생체·정서 변화를 측정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개인별 상태에 맞는 치유활동과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다. 치유농장과 정원 같은 공간에, AI·디지털 기술, 맞춤형 서비스를 연결하는 힐링테크는 과학과 시장을 잇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치유농업도 일회성 체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인의 상태를 측정하고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에 맞는 효과를 평가하는 지속적 회복 서비스로 발전해야 한다.

이제는 6차산업을 넘어 7차산업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6차산업이 생산·가공·서비스의 융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7차산업은 그 기반 위에 ‘치유와 회복’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확장된 산업 패러다임이다. 6차산업의 핵심이 부가가치라면, 7차산업의 핵심은 ‘회복가치’다.

‘회복가치’ 만드는 7차산업의 핵심

치유농업, 치유음식, 산림치유, 해양치유, 치유관광 등에 AI와 디지털 기술을 연결하면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치유농업은 콘텐츠가 되고, AI와 데이터는 지능이 되며, 힐링테크는 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된다. 7차산업은 이 모든 요소가 지역에서 유기적으로 작동케 하는 생태계다.

그 종착점은 회복경제(Recovery Economy)다. 회복경제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농가소득과 일자리를 만들며 지역과 공동체의 활력을 되살리는 경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치유농업의 성과도 프로그램 수나 기술이전 건수를 넘어, 국민과 지역을 얼마나 회복시켰는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치유농업은 이제 가능성을 증명하는 연구실을 넘어 국민의 일상과 시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학적 근거를 표준과 인증으로 연결해 신뢰를 만들고, AI와 힐링테크를 통해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맞춤형 서비스로 구현해야 한다.

과학으로 신뢰를 만들고, AI로 맞춤화하며, 힐링테크로 회복가치를 구현하고, 7차산업으로 회복경제를 열자. 이제 치유농업의 다음 도전은 ‘효과의 증명’을 넘어 ‘회복가치의 산업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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