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치이카와, 3시간 기다렸어요"⋯'먼작귀'의 한국 토벌기 [솔드아웃]

입력 2026-09-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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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작고 귀여운 녀석들을 만나기 위해 어른들이 부지런해졌습니다.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고, 원하는 인형과 키링을 구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는데요. 영화관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시사회에 등장한 인형 탈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마니아층 사이에서 거론되던 '먼작귀', 치이카와는 이제 팝업스토어와 패션 매장, 야구장에 이어 영화관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습니다. 매력 포인트로 귀여운 외모만 꼽기에는 팬들의 반응도 각별합니다.

누군가는 겁이 많지만 끝내 다시 일어나는 치이카와를, 누군가는 언제나 긍정적인 하치와레를 자신의 모습과 겹쳐 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사기를 보며 닮고 싶은 자유로움을 발견하기도 하죠. 팬들 사이에서는 자신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를 찾아주는 심리 테스트까지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미 인형이나 키링으로 소장하고 있는 캐릭터라도 아기나 다른 테마로 변신하면 흔쾌히 지갑을 여는 팬들도 숱한데요. 팝업마다 긴 대기 줄이 생기고 영화관에 자신의 인형까지 데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고 귀여운 녀석들이 어른들의 취향과 지갑을 사로잡은 배경을 들여다봤습니다.

▲(출처=대원미디어)
▲(출처=대원미디어)

먼작귀, 어디서 왔나

'먼작귀'는 '먼(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의 줄임말입니다. 일본에서는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을 뜻하는 '난카 치이사쿠테 카와이이 야츠(なんか小さくてかわいいやつ)'를 줄인 '치이카와(ちいかわ)'로 불리는데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2020년 1월 X(옛 트위터)에 연재하기 시작한 짧은 만화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얗고 동그란 주인공 치이카와와 고양이를 닮은 하치와레, 토끼 모습의 우사기가 중심입니다. 얼핏 평화롭고 귀여운 세계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일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풀을 뽑거나 괴물을 토벌해 돈을 벌고, 더 나은 일을 얻기 위해 자격시험을 치르죠. 갑자기 위험한 존재와 맞닥뜨리거나 가까운 이를 잃을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SNS에서 시작한 만화는 네티즌의 호응에 힘입어 빠르게 활동 반경을 넓혔습니다. 2021년 2월 첫 단행본이 출간됐고, 이듬해 4월부터 후지TV 아침 정보 프로그램 '메자마시TV'를 통해 애니메이션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짧은 호흡의 원작을 그대로 살린 애니메이션은 유튜브 다시보기 누적 조회 수 5억 회를 넘어서는 등 인기를 끌고 있죠.

일본 내 위상은 수상 실적에서도 드러납니다. 치이카와는 한 해 동안 가장 활약한 캐릭터와 라이선스 브랜드를 선정하는 '일본 캐릭터 대상'에서 2022년과 2024~2026년 네 차례 대상을 받았습니다. 최근 3년 연속 정상에 오르며 이 상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죠.

올해 7월 일본에서 개봉한 첫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캐릭터의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습니다. 개봉 52일 만에 누적 관객 1000만 명, 흥행수입 146억6000만엔을 돌파했습니다. 개봉 두 달 차에도 일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킬 정도로 장기 흥행을 이어갔죠.

치이카와의 성장은 단순히 캐릭터의 '귀여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캐릭터들이 노동과 시험, 예기치 못한 위험을 견디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사소한 성취를 기뻐하는 모습이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데요. 귀여운 외형과 녹록지 않은 삶의 간극은 어린이에게는 모험으로, 어른에게는 자신의 일상을 비춰보는 이야기로 읽히며 사랑받고 있죠.

▲(출처=대원미디어)
▲(출처=대원미디어)

팝업→영화관 떴다…국내도 치이카와 붐

일본을 휩쓴 치이카와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일본 여행에서 사 오는 굿즈나 일부 마니아층이 즐기는 캐릭터에 그쳤지만, 애니메이션과 SNS 밈을 통해 인지도를 넓히면서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소비 열기가 가시화됐죠.

반응은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2024년 12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치이카와 팝업스토어는 문을 연 지 2시간 만에 입장 대기 번호가 1000번을 넘어섰습니다. 열흘간 매장을 찾은 방문객은 약 3만 명에 달했죠. 아이파크몰은 이 같은 집객력을 확인한 뒤 올해 2월 치이카와 정규 매장인 '치이카와샵 아이파크몰 용산점'을 유치했습니다.

이른바 '용치마(용산 치이카와 마켓)'로도 불리는 치이카와샵은 최근에도 뜨겁습니다. 한복 마스코트 상품이 입고되는 데 따른 열기인데요. 추석이 다가오는 만큼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있죠. 극장판 영화 개봉일이 다가오면서 '인어섬의 비밀' 굿즈에 대한 관심도 치솟고 있습니다. 토요일인 19일 오후 2시 기준 웨이팅 번호는 1160번대에 달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는 전언입니다.

팝업도 한 번의 행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더현대 서울에서는 캐릭터들을 아기 모습으로 재해석한 '치이카와 베이비' 팝업이 열렸고, 지난달엔 서울 성수동 무신사 스토어에 초밥으로 변신한 캐릭터를 내세운 '치이카와 스시' 팝업이 들어섰습니다. 기본적인 생김새는 유지하면서도 의상과 상황을 바꾼 한정 상품이 나올 때마다 팬들이 다시 매장을 찾는 흐름이죠.

접점은 캐릭터 전문 매장 밖으로도 넓어졌습니다. 스파오는 잠옷과 티셔츠, 가방 등 먼작귀 협업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고, 프로야구 LG 트윈스도 선수와 캐릭터를 결합한 유니폼·키링·응원용품을 출시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시작한 캐릭터가 패션과 스포츠를 거쳐 일상에서 사용하는 상품으로 영역을 확장한 모습입니다.

이제 치이카와는 국내 영화관까지 향합니다. 30일 개봉하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15일 기준 사전 예매량 2만 장을 넘어서며 전체 예매 순위 5위에 올랐습니다. 치이카와와 하치와레, 우사기 탈 인형이 참여하는 무대인사는 약 3000석이 모두 팔렸고 프리미어 상영회도 매진됐죠.

개봉에 앞서 진행한 시사회 반응도 뜨겁습니다. X(옛 트위터)에서는 탈 인형들이 차례대로 극장에 등장하는 영상들이 수십만~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관에 자신의 치이카와 인형을 챙겨 간 인증샷을 다수 게재하기도 했죠.

팝업 오픈런이 한정 굿즈를 원하는 핵심 팬덤의 화력을 보여줬다면 영화는 치이카와가 보다 넓은 대중에게 다가갈 시험대입니다. 굿즈를 사는 데 머물던 팬들이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영화를 통해 처음 치이카와를 접한 관객이 다시 상품 소비로 유입되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는데요. 국내 치이카와 열풍이 마니아층의 수집 문화를 넘어 대중적인 캐릭터 소비로 번질지 관심이 쏠립니다.

▲(출처=대원미디어)
▲(출처=대원미디어)

같은 캐릭터를 또 사는 이유

치이카와의 특징은 팬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뚜렷하게 갈린다는 점입니다. 겁이 많고 자주 울지만 포기하지 않는 치이카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친구를 살뜰히 챙기는 하치와레, 종잡을 수 없이 자유분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우사기까지 성격과 행동 방식이 확연히 다르죠. 귀여운 외형만 보고 고르는 데서 나아가 자신과 닮았거나 닮고 싶은 캐릭터를 '최애'로 삼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성격과 가장 가까운 먼작귀 캐릭터를 찾는 테스트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습니다. 치이카와와 하치와레, 우사기 등을 각각 MBTI 유형에 연결한 온라인 테스트가 등장했고, 이에 앞서 2024년에는 성격·우정·사랑·직업·미래를 주제로 자신과 맞는 캐릭터를 찾아보는 단행본 '먼작귀 심리테스트'도 출간됐는데요. 공식적인 성격 분류와는 별개로 캐릭터가 자신을 설명하고 타인과 취향을 공유하는 언어가 된 셈입니다.

이는 캐릭터를 대하는 젊은 층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캐릭터산업백서'에 따르면 만 3세부터 만 69세 이하의 국민 중 최근 1년 동안 캐릭터 콘텐츠를 2~3개월에 1회 이상 이용한 3000명 가운데 60.5%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유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를 꼽았습니다. 이 뒤를 '캐릭터의 이야기나 행동이 좋아서'(35.8%)라는 응답이 이었는데요. 특히 30대 이하에서는 디자인과 이야기·행동을 중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했습니다. 보기 좋은 캐릭터를 소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까지 자신의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치이카와의 인기 역시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가방에 최애 캐릭터 키링을 달거나 인형을 여행지와 영화관에 데려가 사진을 찍는 행위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신이 사진에 직접 등장하지 않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취향과 기분을 드러낼 수 있는데요. 캐릭터 인형이 팬을 대신해 일상을 기록하는 작은 분신이자,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게 하는 표식으로 기능하죠.

캐릭터의 모습이 계속 달라지는 것도 반복 구매를 이끌 수 있습니다. 아기 모습의 '치이카와 베이비', 초밥으로 변신한 '치이카와 스시'를 비롯해 매지컬·한복 등 새로운 콘셉트가 잇달아 등장합니다. 팬에게는 이미 가진 치이카와라도 의상과 표정, 이야기가 달라지면 별개의 상품이 됩니다. 캐릭터 고유의 성격은 유지하면서 유행과 계절에 맞춰 새로운 모습을 입히는 방식으로 구매할 이유를 거듭 만들어내는 모습이죠.

팝업과 매장 한정 상품, 무작위로 캐릭터가 나오는 랜덤 키링과 피규어는 여기에 수집의 재미를 더합니다. 포장을 열기 전까지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모르는 기대감이 추가 구매를 부르고, 원하는 최애가 나오지 않으면 팬들끼리 상품을 교환합니다. 여러 종류를 모두 모은 사진이나 희귀 상품 구매 인증이 SNS에 공유되면서 소비는 개인의 소장을 넘어 팬들과 함께 즐기는 놀이로 확장됩니다.

결국 치이카와의 경쟁력은 하나의 인기 캐릭터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닌 캐릭터 집단에 있습니다. 팬들은 자신을 닮은 최애를 고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된 최애를 거듭 소장하는데요. 캐릭터를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층의 소비 방식이 치이카와 붐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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