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정작 국내의 한복 생산기반은 약해지고 있다. 경복궁 앞 한복대여업체 수는 늘어날지 몰라도, 한복 제조업체 수는 줄고 있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한복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명주·삼베·모시·무명 같은 전통섬유와 제직·염색, 침선·누비·자수·금박·매듭 같은 제작기술, 그리고 모자·신발·장신구 등 관련 상품 기반까지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복이 주목받는 지금,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복 생태계가 무너질까 봐 걱정이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한복정책은 부실하다. 홍보 사업은 꾸준히 추진해 왔지만, 한복을 이루는 원료와 소재, 제작기술과 인력까지 하나의 정책대상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헌법이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지 오래지만, 한복 생태계를 책임지는 정책은 그 책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변화의 계기는 마련됐다. 지난 4월 ‘한복문화산업진흥법’이 제정되면서 한복정책도 비로소 독자적인 법적 기반을 갖추게 됐다. 한복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고, 실태조사와 전문인력 양성, 연구개발, 창업과 제작, 유통과 해외진출까지 지원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 한복 생태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지금부터 정책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
그런데 한복의 정의는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행법은 한복을 전통복식과 이를 계승·발전시킨 복식으로 폭넓게 정의하는데, 한복을 완성된 의복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복은 바지와 저고리, 치마와 두루마기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통섬유와 제작기술이 어우러져 비로소 한복이 된다. 현행 정의대로라면 정책도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제품에 집중되고, 원료 생산자와 소재 제조자, 전통기술을 이어가는 장인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한복정책은 전통섬유 생산부터 한복의 제작,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다뤄야 한다. 생산기반을 지키는 일과 제작기술을 계승하는 일, 상품을 개발하고 판로를 넓히는 일을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수단도 다양해져야 한다. 행사에 돈을 쓸 게 아니라 생산자와 장인, 기업을 직접 지원해야 하며, 품질 기준을 마련해 시장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원형과 원료·소재·제작기술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지난 12일 한국한복진흥원에서 학술대회 하나가 열렸다. 이명여(1622~1647) 묘의 복식을 연구해 당시의 직물과 문양, 기법까지 되살려낸 자리였다. 한복의 세계화라고 하면 흔히 화려한 패션쇼나 해외 전시를 떠올리지만, 그 출발점은 오히려 이러한 진중한 연구와 기록일지 모른다. 원형을 알아야 새로운 한복도 만들 수 있고, 소재와 기술을 알아야 고아한 한복도 만들 수 있다. ‘옷 한 벌’ 뒤에 있는 한복 생태계를 키워, 우리 전통 한복의 맵시를 살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