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상자 말고 세 알만”…고물가에 가벼워진 추석 장바구니 [르포]

입력 2026-09-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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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4개·5개씩 소량 판매 인기…반찬가게엔 “해먹는 것보다 싸다”
전통시장 차례상 35만원…상인 “과일값 올라 선물세트 손님 줄어”

▲추석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반찬과 음식을 고르고 있다. (김재은 기자 dove@)
▲추석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반찬과 음식을 고르고 있다. (김재은 기자 dove@)

5만원짜리도 좋지요?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과일가게 앞에 선 80대 어르신은 사과 한 알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본 뒤 상자에 적힌 가격표를 한참 들여다봤다. 옆에는 7만원짜리 사과 상자가 놓여 있었고 가장 저렴한 상품도 5만원이었다. 고민이 길어지자 상인은 “원래 다 8만~9만원씩 나가는 거예요. 제일 좋은 거 가져가세요”라며 안심시켰다. 어르신은 그제야 5만원짜리 상자를 골랐다.

이날 청량리종합시장은 명절 장을 보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만 장바구니를 채우는 풍경은 예전과 달랐다. 한 자루, 한 박스씩 사던 대량 구매 대신 필요한 만큼만 골라 담거나 단돈 1000원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찾아 발품을 파는 손님들이 시장 골목을 메웠다.

과일 매대에는 붉은 사과와 포도, 샤인머스켓이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상인들은 홍옥을 헝겊으로 닦아 윤을 냈고 제수용 대추도 묵직하게 살이 올라 손님을 맞았다. 하지만 풍성하게 쌓인 상품과 달리 손님들의 손길은 신중했다. 사과는 크기에 따라 3개에 1만원, 4개에 1만원, 5개에 1만원 등 소량으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었다. 한 상인이 큰 사과를 가리키며 “제사상에 올리려면 큰 게 낫지”라고 권했지만 손님은 상대적으로 작은 5개 1만원짜리를 골랐다. 상인은 “그래, 다 어머니 취향이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포도 한 상자를 들여다보던 손님들은 “2만원짜리 포도 한 박스 보소. 포도가 비싸”, “다 올랐네”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박스에 8000원이라고 적힌 샤인머스켓 앞에서도 선뜻 지갑을 여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상인들은 상자째 구매하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사가는 손님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추석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내 한 과일 매대에 배, 사과, 귤 등이 가격표와 함께 진열돼 있다. (김재은 기자 dove@)
▲추석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내 한 과일 매대에 배, 사과, 귤 등이 가격표와 함께 진열돼 있다. (김재은 기자 dove@)

올해 차례상 비용은 할인 지원에 힘입어 소폭 하락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평균 19만6630원으로 지난해보다 1.5% 줄었다. 대형유통업체는 각종 할인으로 가격 부담이 완화된 반면 전통시장은 1.6% 올랐다. 품목별로는 축산물 비용이 상승했지만 과일류와 수산물, 임산물은 공급 증가로 가격이 내렸다. 품목과 구매처, 할인 적용 여부에 따라 소비자가 체감하는 부담은 달랐다.

과일 매대에서는 낱개를 찾는 손님이 늘었고 시장 안쪽 반찬가게에는 필요한 음식만 사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김치와 나물, 젓갈 등을 고르던 한 손님은 “직접 해 먹는 것보다 싸다”고 말했다. 명절상을 간소하게 차리면서 비용과 조리 부담을 함께 줄이려는 모습이었다.

정육점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상인은 “올해는 추석이 예년보다 일러서 과일이고 뭐고 가격이 좀 비싸다”고 말했다. 물가 부담에도 오랜만에 만날 가족을 위한 지출까지 줄이지는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고기를 구매한 한 70대 여성은 “그래도 손주들이 많이 놀러 오니까 고기를 많이 샀다”며 “갈비찜이라도 배불리 해줘야지”라고 환하게 웃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좁은 골목 사이로 과일을 가득 실은 카트가 바쁘게 오갔다. “지나갑니다! 가요, 가요!”라는 상인의 우렁찬 외침이 명절 대목의 활기를 더했다. 다만 손님들은 가격표를 두세 번씩 확인하며 과일 한 상자 대신 몇 알을 사고 여러 음식을 직접 만들기보다 필요한 반찬만 골라 담았다. 도매를 마치고 소매 매대를 정리하던 한 과일 상인은 “작년에는 선물세트가 척척 나갔는데 올해는 확실히 줄었다”며 “과일값이 하도 오르다 보니 손님들이 묶음 상자에는 손을 잘 안 댄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 시장 골목을 오가고 있다. (김재은 기자 dove@)
▲추석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 시장 골목을 오가고 있다. (김재은 기자 d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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