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감각 자본주의 ① 우리는 느끼기 전에 이미 소비한다

입력 2026-09-14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같은 커피가 어떤 곳에서는 4000원, 어떤 곳에서는 9000원에 팔린다. 이 격차를 단순히 원두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두 잔을 가른 것은 향과 조명, 음악과 동선, 그리고 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다. 이제 소비자는 상품만 사지 않는다. 그 상품이 놓인 하나의 장면까지 함께 산다.

성수동 팝업스토어 앞에 늘어선 줄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제품을 사기 위해서만 그곳에 가지 않는다. 공간에 들어가 보고, 만지고,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다시 SNS에 올린다. 무엇을 샀는지보다 어디에 다녀왔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상품을 소비하는 동시에 그 세계 안에 존재했던 자신을 소비하는 것이다.

접촉하는 순간 ‘가치의 세계’에 빠져

나는 이 국면을 ‘감각 자본주의’라 부른다. 감각과 자본의 결합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에바 일루즈는 감정과 경제가 서로의 언어를 닮아가는 ‘감정 자본주의’를 이야기했고, 게르노트 뵈메는 분위기와 미학적 연출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를 분석했다. 감각 자본주의 역시 그런 논의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브랜드와 공간, 플랫폼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경제적 가치로 바꾸는지 설명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이 감각을 설계하는 문법은 오래전부터 전시장이 사용하던 것이다. 전시는 동선과 조명, 소리와 공간의 밀도를 통해 어디에서 걸음을 늦추고 무엇을 먼저 보게 할지를 설계한다. 이제 그 기술은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애플스토어는 기기의 성능만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향수 브랜드는 향과 함께 그 향이 놓일 세계를 연출한다. 전시장은 그렇게 사람을 유물 앞으로, 브랜드는 상품 앞으로 데려간다.

여기서 감각은 자본으로 변한다. 잘 설계된 공간은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고, 머문 사람은 사진을 찍는다. 이미지는 SNS를 통해 퍼지고 다시 다른 사람을 그 장소로 불러들인다. 감각은 체류가 되고, 체류는 기록이 되며, 기록은 공유를 거쳐 브랜드의 가치가 된다. 소비자는 기업이 만든 감각을 자신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시하며 가치의 생산과 유통에 참여한다.

그래서 감각은 판단보다 먼저 작동한다. 감정 자본주의가 느낌이 상품이 되는 현상을 보았다면, 감각 자본주의가 바라보는 것은 그보다 앞선 접촉의 순간이다. 우리는 조명의 색온도를 분석한 뒤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의 빛과 냄새, 음악과 온도에 먼저 반응하고 나중에 말한다. “그냥 좋았어.” 그 ‘그냥’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설계가 숨어 있다.

누군가 설계·배치한 경제적 조건들

그러나 감각은 공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빛을 설계하고 향을 고르며 공간을 정돈한다. 우리가 분위기라는 이름으로 누리는 것 뒤에는 디자이너와 기획자, 매장 노동자의 시간이 있다. 감각이 가치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감각을 누가 만들고 그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취향 역시 순수하게 개인적인 선택만은 아니다. 어떤 감각을 선택할 수 있는가는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조건과 연결된다.

감각의 경제는 이미 상품을 넘어 도시와 공간, 플랫폼 전체로 번지고 있다. 도시가 어떻게 취향의 상품이 되는지, 우리가 왜 분위기에 값을 치르는지, 그 비용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살펴야 한다. 오늘 당신이 무언가를 “그냥 좋아서” 골랐다면, 그 ‘그냥’이야말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부분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용혜인, 성평등부 장관 후보 자진사퇴…“의정활동 매진”[종합]
  • 이창동 ‘가능한 사랑’,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대상…24년 만에 본상
  • 개미도 돌아선 삼전·하이닉스…9월 13조 순매도
  • [르포] 데이터 모으고 실차로 검증⋯포티투닷 자율주행 ‘테스트 기지’ 가보니
  • 대미투자 첫 사업 발표 눈앞…2000억달러 ‘안전판’ 지켜낼까
  • 이투데이 ‘2027 테크 퀘스트’ 10월 개최⋯대한민국 AI의 미래를 묻다
  • 선선해졌다고 모기 방심 금물…일본뇌염 환자 80%가 9~10월 발생 [그래픽]
  • 우정보다 묘한 우정…'포핸즈'가 되살린 라이벌 서사 [해시태그]
  • 오늘의 상승종목

  • 09.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04,772,000
    • -0.29%
    • 이더리움
    • 3,393,000
    • -1.17%
    • 비트코인 캐시
    • 302,900
    • -1.37%
    • 리플
    • 1,832
    • -1.24%
    • 솔라나
    • 136,800
    • -0.94%
    • 에이다
    • 281
    • -0.35%
    • 트론
    • 465
    • +0.65%
    • 스텔라루멘
    • 243
    • -0.82%
    • 비트코인에스브이
    • 23,380
    • +4.89%
    • 체인링크
    • 15,380
    • -1.66%
    • 샌드박스
    • 48.94
    • -2.3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