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명권·대법원장 제청권 충돌 본격화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면서 청와대와 사법부 간 갈등이 새 국면을 맞았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 법원 내부에서도 향후 재제청 절차와 대응 방향을 두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손봉기 후보자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며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이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 제청한 지 열흘 만이다.
한 판사는 “임명권에 후보자를 직접 선택할 권한까지 포함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최종 결정권은 아니다”라며 “결국 두 권한이 만나야 온전한 대법관 임명이 이뤄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상황을 사법부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것 같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법관은 “초유의 사태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며 “법이나 규정, 기존 관행으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상정하지 못했던 영역에 들어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올해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을 추천한 이후 장기화했다. 통상 추천위가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최종 후보자를 정해 제청해 왔지만, 이번에는 양측이 후보자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제청이 약 7개월간 미뤄졌다.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의 첫 대법관이라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 김민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유력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법원은 다른 후보들을 우선 검토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게 되고 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을 겸하고 있다는 점 등이 변수로 작용했다.
갈등은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손 후보자를 ‘서면 제청’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후보자를 제청해 온 관례와 다른 방식이었고, 여권에서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사실상 제약한 것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청와대가 손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쟁점은 특정 후보자를 둘러싼 이견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어떻게 조율할지로 확대됐다.

현행 법원조직법에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후속 절차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기존 후보추천위가 추천한 후보 가운데 다른 인물을 다시 제청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추천 절차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존 후보군을 유지한 채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결국 조 대법원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갈등은 ‘2라운드’로 접어들 전망이다. 기존 후보 가운데 다른 인물을 재제청할 경우 누구를 선택하느냐를 놓고 다시 청와대와 조율해야 한다. 반대로 대법원이 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한다면 청와대가 요구하는 재제청 방식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양측 충돌이 더욱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법관 공백 장기화도 불가피해졌다. 노 전 대법관이 3월 후임자 없이 퇴임하면서 대법원은 반년 가까이 대법관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다만 다음 달 7일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는 청와대와 대법원이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도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해 대법관 두 자리의 동시 장기 공백 가능성은 일단 낮아졌다.
이번 충돌은 향후 청와대와 사법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는 제청 거부 이후 절차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가 일회성 인사 갈등에 그칠지, 대법관 인선 권한을 둘러싼 헌법기관 간 힘겨루기로 번질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