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항이 단순히 크루즈가 잠시 머무는 ‘기항지’를 넘어 승객이 타고 내리는 ‘모항(Home Port)’으로 도약하기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시작했다.
부산항만공사(BPA)는 글로벌 크루즈 시장을 이끄는 MSC 크루즈, 로얄캐리비안 그룹,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라인 홀딩스(NCLH)와 전략적 협력을 확대해 부산항 입항을 크게 늘리고, 준모항과 오버나잇 운항을 거쳐 장기적으로 모항 기능을 확보하는 단계적 전략을 추진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협의 결과 글로벌 3대 크루즈 그룹의 부산항 입항은 올해 87항차에서 내년 127항차로 40항차 늘어난다. 증가율은 약 46%에 달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한 크루즈 입항 확대다. 하지만 부산항만공사가 이번 미국 마이애미 출장에서 확인한 것은 '배를 더 많이 부산으로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크루즈 승객의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도시가 되기 위해 부산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직접 확인한 출장에 가깝다.
부산항만공사 대표단은 지난 24일부터 25일까지 미국 마이애미를 방문해 MSC 크루즈 미주법인과 로얄캐리비안 그룹,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라인 홀딩스 경영진을 잇달아 만났다.
이들 3개 그룹은 대형 크루즈부터 프리미엄, 럭셔리 크루즈까지 다양한 브랜드와 대규모 선대를 보유한 글로벌 시장의 핵심 사업자다.
부산항만공사는 개별 선박이나 브랜드 단위의 유치 경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룹 전체와 중장기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항 횟수를 늘리는 동시에 준모항과 오버나잇, 럭셔리 크루즈까지 부산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MSC 크루즈는 올해 부산항 23항차에서 내년 37항차로 입항을 확대한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인 익스플로라 저니를 부산항에 새로 유치하고, 기존 MSC 벨리시마호의 부산 준모항 운영도 이어간다.
로얄캐리비안 그룹은 54항차에서 74항차로 늘린다. 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실버씨는 11항차에서 26항차로 두 배 이상 확대되며, 올해 없었던 부산 오버나잇 일정도 내년 3항차 추진된다.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라인 홀딩스 역시 10항차에서 16항차로 부산항 입항을 늘린다. 부산항만공사는 그룹 내 오세아니아 크루즈의 부산 오버나잇 경험을 바탕으로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항공·철도 연계 상품도 확대할 계획이다.
부산항만공사가 마이애미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살핀 곳은 MSC 전용 크루즈터미널이었다.
모항은 기항지와 운영 방식부터 다르다.
기항지는 승객이 배에서 내려 관광하고 다시 승선하면 된다. 반면 모항은 수천 명의 승객이 동시에 탑승하고 하선한다. 승객 이동뿐 아니라 수하물, 체크인, 보안검색, 출입국·세관·검역(CIQ) 절차가 한꺼번에 움직여야 한다.
마이애미 MSC 터미널은 대형 크루즈선 한 척에서 발생하는 약 5000명의 승객과 6000개에 달하는 수하물을 약 2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수하물 위탁과 분류, 자동 체크인, 보안검색, CIQ 절차가 하나의 동선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부산항이 모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단순히 더 큰 터미널 건물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배가 정박할 공간만 확보한다고 모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도시와 항구를 오갈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하물과 출입국 절차까지 막힘없이 돌아가야 한다.
부산항만공사가 이번 출장에서 터미널의 규모보다 운영 프로세스를 집중적으로 살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곧바로 대규모 모항을 구축하기보다는 준모항과 오버나잇 운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단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준모항과 오버나잇은 부산항이 실제로 대규모 승객 이동과 수하물 처리, 관광객 체류 수요를 경험할 수 있는 중간 단계다.
선사 입장에서도 부산을 단순한 관광 기항지가 아닌 승객 교체와 여행의 시작·종료가 가능한 도시로 시험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운영 경험과 시장 수요를 축적하고, 이후 항공·철도 접근성과 터미널 수용 능력, 수하물 처리 및 CIQ 시스템을 함께 개선해 모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부산항의 크루즈 모항 경쟁력은 항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 관광객이 부산까지 얼마나 편리하게 들어올 수 있는지, 배에서 내려 부산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다시 다른 도시와 얼마나 쉽게 연결되는지가 모두 맞물려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해외 관광객이 서울 관광을 거친 뒤 KTX나 국내선 항공편으로 부산으로 이동하는 항공·철도 연계 모델도 확대할 방침이다.
여기에 부산의 미식과 문화, 야간관광을 결합해 단순한 승선·하선 도시가 아닌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크루즈선이 부산에 오래 머물수록 도시가 얻는 것도 커진다
부산항 입장에서 오버나잇 확대가 갖는 의미도 작지 않다.
기항 시간이 짧으면 관광객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주요 관광지만 둘러보고 배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하루 이상 머무는 오버나잇 일정이 늘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광객의 소비가 식당과 호텔, 쇼핑과 야간관광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진다.
크루즈선의 입항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승객이 부산에서 얼마나 머무르고 얼마를 소비하느냐다.
부산항만공사가 대형선박의 단순 입항 확대에서 럭셔리 크루즈와 준모항, 오버나잇으로 전략을 넓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번 더 많은 배를 받는 것보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크루즈 여행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이번 글로벌 선사들과의 전략적 논의를 통해 부산항의 기항 경쟁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한편, 모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며 “준모항과 오버나잇을 확대해 운영 경험을 축적하고, 항공·철도 접근성과 터미널·수하물·CIQ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해 부산항의 강점을 모항 경쟁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5000명의 승객과 6000개의 수하물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항만,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 그리고 배를 타기 전후로 하루 이틀 더 머물고 싶은 관광 콘텐츠까지.
부산항이 이제 풀어야 할 문제는 선박 유치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크루즈 관문으로 만드는 일이다.
‘기항’을 넘어 ‘모항’으로. 부산항의 다음 항로가 이제 막 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