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로 바이오 연구와 신약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혁신의 성과가 실제 환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바이오와 AI의 융합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투자와 산업 생태계 구축, 글로벌 규제조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26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2026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BC)’ 기조강연에서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와 제레미 파라(Jeremy Farrar)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차장보는 각각 바이오 혁신을 앞당길 기술과 이를 사회에 확산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바이오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으로 AI와 바이오기술의 융합을 꼽았다. 그는 “복잡한 생명현상 분석을 넘어 효소 기능 예측과 바이오 기반 생산, 의약품 부작용 예측과 신약 후보물질 발굴 등 산업 현장에서도 AI의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단백질 기능 예측이다. 이 교수 연구팀은 딥러닝으로 단백질 서열을 분석해 효소 기능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기존 방식으로 약 15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 단백질 약 3400만 개의 분석을 10일 이내에 수행했다. 이후 트랜스포머 기반 모델을 적용해 예측 정확도도 높였다.
AI는 의약품 안전관리에도 활용된다. 연구 당시 허가된 의약품 2159개를 두 종류씩 조합하면 약 230만 개의 조합이 가능하지만 알려진 부작용은 약 46만 개에 그쳤다. 연구팀은 딥러닝으로 화학구조를 분석해 알려지지 않은 약물 간 상호작용과 부작용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같은 작용기전을 가지면서 구조가 다른 약물 가운데 부작용 위험이 낮은 대체 약물을 찾는 연구로도 확장했다.
신약개발에서는 AI를 전·후단 스크리닝에 활용해 후보물질 발굴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고 기존 의약품의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찾는 약물 재창출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바이오와 의료, 엔지니어링, AI의 융합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AI가 바이오 혁신의 ‘속도’를 높인다면 파라 사무차장보는 그 성과를 환자에게 전달하는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혁신에 속도를 내고 그 혁신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것은 지금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파라 사무차장보는 “코로나19 당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팬데믹 발생 이후 1년여 만에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수십 년간의 기초연구가 있었다”며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당장의 성과와 관계없이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미래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서 제품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이오·제약산업의 특성상 5년에서 20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자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글로벌 규제조화도 혁신을 환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꼽았다. 파라 사무차장보는 “WHO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한국 규제당국, 유럽과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규제기관을 연결해야 한다”며 “국가별 규제가 혁신 의약품과 백신의 시장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규제조화를 높이면 시장 확대와 가격 개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혁신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