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달러 예금·기업 달러 환류 등 달러 유치 초점
전통적 금리인상·시장개입 넘어 환율방어 수단 다변화

아시아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을 소진하지 않으면서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달러 예금 유입 확대, 기업의 달러 자금 본국 환류, 해외 채권자금 유치 등 외화 유입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견조한 수출, 탄탄한 거시경제 펀더멘털에도 중동 긴장과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아시아 통화 약세가 예상보다 심화하자 외환보유액을 직접 투입하는 전통적인 시장 개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달러 유입 자체를 늘리는 방식으로 환율 방어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분석했다.
가령 인도는 최근 해외 거주 자국민으로부터 약 400억달러(약 57조원)에 달하는 고금리 달러 예금을 유치하며 5월 사상 최저치로 절하됐던 루피화의 반등을 뒷받침했다. 한국은 기업들의 달러 자금 국내 환류를 가속화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달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8.8% 올라 국내 외환시장 기준 2009년 3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인도네시아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최근 두 달간 16억달러의 채권 자금을 유치했으며 대만은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일 때 수출업체들에 미국 달러를 매도하도록 지시해왔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글로벌리서치의 클라우디오 피론 아시아 외환·금리 전략 책임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지만 아시아 각국은 본질적으로는 구조적으로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가능한 한 최대한 보전하려는 했다”고 풀이했다.
아시아 각국이 환율 방어 수단을 다변화하는 배경에는 중동 분쟁 이후 한층 커진 통화 약세 압력이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 아시아의 취약성이 부각됐다. 무역수지 흑자와 탄탄한 거시경제 펀더멘털, 견조한 수출, 역내 증시 강세에도 아시아 통화의 약세 폭은 예상보다 컸다.
실제 블룸버그가 추적하는 22개 신흥시장 통화 가운데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인도 루피화, 태국 바트화는 올해 수익률이 가장 부진한 5개 통화에 포함됐다. 반면 콜롬비아 페소화와 브라질 헤알화, 멕시코 페소화 등 중남미 통화는 수익률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대체로 다른 신흥국보다 금리가 높은 데다 상당수가 원유 수출국이어서 유가 상승의 충격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M&G의 로우관이 아시아 채권 책임자는 “이는 아시아 통화 약세가 수출 부진이나 무역적자 같은 기초체력의 문제라기보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역내 외환시장으로 충분히 유입되지 않는 등 자본 흐름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따라서 외환시장 개입만으로는 통화 약세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아시아 정책당국은 외화 자금 유입원을 계속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신흥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전통적인 환율 방어 수단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5월과 6월 기준금리를 총 100bp(1bp=0.01%포인트) 인상했으며 인도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외환시장 개입도 지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ㆍ인도 ㆍ필리핀 ㆍ태국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아시아에서 외환보유액 감소폭이 가장 큰 국가들로, 감소율은 4~9%에 달했다.
필리핀 통화 당국은 올 들어 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50bp 인상했고, 한국은행은 지난달 3년 만에 통화 긴축을 단행했다. 싱가포르 소재 MUFG은행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올해 금리를 두 차례 더 인상하고 한국은행도 최소 한 차례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자들에게는 미국 통화정책의 향방이 여전히 핵심 변수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에 연준 위원 세 명이 반대표를 던진 이후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들 반대 위원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조치를 지나치게 늦출 경우 향후 훨씬 더 공격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마이클 완 MUFG은행 선임 외환 연구원은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유가와 엘니뇨, 미국 국채 금리, 달러화가 결국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등 글로벌 상황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더 많은 실탄을 비축하고 있다”며 “더 많은 달러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이 전략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