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 꺼먹살이 인기 분석 [해시태그]

입력 2026-07-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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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작품의 줄거리와 결말 등의 스포(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나의 작은 흑임자떡…사람의 양기를 먹는 귀매가 ‘반려 귀매’가 되기까지
꺼먹살이 굿즈 요청 쇄도…꺼먹살이 뜻, 설화 등 관심

저건 아주 무서운 놈이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등장한 귀매(초자연적인 존재, 귀신과 요괴등을 통칭). 공포에 눈을 떠보니 눈앞에는 웬 조그마한 흑임자떡이 서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초롱초롱하고 순수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이죠.


(출처=넷플릭스 '동궁' 캡처)
(출처=넷플릭스 '동궁' 캡처)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에서 구천(남주혁 분)은 ‘꺼먹살이’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설명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닌데요. 꺼먹살이는 산 사람에게 붙어 양기를 먹는 귀매죠. 작은 몸으로 뒤뚱뒤뚱 걸어 다닐 때는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귀의 세계에서는 몸집을 키워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데요. 구천이 경계하지 않았다면 언제든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이 앙증맞음에 “귀여워”라는 고백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데요. ‘조선 그루트’, ‘흑임자떡’, ‘반려 귀매’와 같은 애칭은 당연스레 따라왔죠.

‘동궁’ 자체의 출발도 나쁘지 않습니다. 17일 8개 에피소드가 공개된 뒤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1위에 올랐는데요.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는 20일 기준 세계 넷플릭스 TV쇼 4위를, 한국·태국·방글라데시·스리랑카에서는 1위를 기록했죠. 81개 국가와 지역의 톱10에도 진입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는데요. 한국적 설화와 궁중 미스터리를 결합한 세계관, 현실과 귀의 세계를 대비한 미술과 시각효과, 조승우와 장영남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에는 호평이 나오죠. 반면 초반 전개가 느리고 후반부 반전이 거듭되면서 서사가 복잡해졌다는 지적도 따라오는데요. 하지만 꺼먹살이는 다릅니다. 이런 평가의 온도 차와는 전혀 상관없는 귀여움으로 지배 중이죠.


(출처=넷플릭스 '동궁' 캡처)
(출처=넷플릭스 '동궁' 캡처)


꺼먹살이는 제작진이 이름부터 완전히 새로 만든 존재는 아닌데요. ‘꺼먹살이 귀신’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2009년 민속원에서 출간한 ‘도시전승설화자료집성’에 실려있죠. 고전 문헌에 반복해 등장하는 정형화된 요괴라기보다 비교적 최근까지 구전된 도시 괴담 또는 목격담에 가까운데요. 이후 설화 선집에서는 ‘꺼먹살이 도깨비 이야기’라는 이름으로도 소개됐습니다.

‘동궁’의 권소라·서재원 작가는 전승 속 꺼먹살이를 “어둡고 아이 같은 외형의 존재가 산에서 튀어나와 ‘나는 꺼먹살이, 꺼먹살이, 꺼먹살이’라고 말하며 따라왔다”는 이야기로 설명했는데요. ‘꺼먹’은 칠흑 같은 어둠, ‘살이’는 살아가는 존재를 뜻하는 말이 합쳐진 뜻으로 유추했죠. 구천과 짝을 이룰 ‘강아지 같은 귀여운 귀매’를 찾다가 이 이름과 전승을 빌려오게 된 건데요. 즉 드라마 속 둥근 돌 같은 얼굴과 커다란 눈, 짧은 팔다리, 양기를 먹는 능력, 귀의 세계에서 거대해지는 설정은 제작진의 상상력입니다. 다만 최대한 한국적인 고유의 이미지를 넣기 위해 ‘석상 혹은 흙으로 만든 인형’을 떠올렸다고 전했죠.

꺼먹살이의 인기를 외모만으로 설명하면 매우 아쉽습니다. 꺼먹살이는 귀여운 장식물이 아니라 구천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고 현실과 귀의 세계를 이어주며 무거운 이야기의 호흡을 바꾸는 존재인데요.

2화 소금 창고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꺼먹살이는 경계해야 할 무시무시할 존재였죠. 구천을 따라다니는 설정 또한 애정이나 충성심이 아닌 그저 먹이를 품은 인간이기 때문이었죠.


(출처=넷플릭스 '동궁' 캡처)
(출처=넷플릭스 '동궁' 캡처)


꺼먹살이는 본능과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며 때로 구천과 생강(노윤서 분)을 돕는데요. 인간의 편도, 완전한 위협도 아닌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말입니다. 관계가 달라지는 계기는 뱀에게 다친 꺼먹살이를 구천이 구하는 장면인데요. 구천은 “내 양기 조금 줄게”라며 손가락을 내밀죠. 인간의 양기를 빼앗던 행위가 자발적인 나눔으로 바뀌자, 꺼먹살이도 먹이를 쫓는 귀매에서 자신을 살려준 구천을 따르는 동료로 변하는데요. 구천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달려들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구천을 몸으로 막아섭니다.

둘은 인간에게 경계와 배척을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닮았는데요. 구천이 꺼먹살이를 살린 선택은 자신처럼 경계 밖에 놓인 존재를 외면하지 않은 행동인 셈이죠.

몸에 비해 큰 머리와 둥근 얼굴, 얼굴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 작은 입, 짧은 팔다리와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귀여운 요소를 모두 때려 박은 듯한 꺼먹살이에 끌리는 건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요.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1943년 발표한 논문에서 유아적인 신체 특징의 조합을 ‘베이비 스키마’, 독일어로 ‘킨트헨스키마’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은 큰 머리와 둥근 얼굴, 큰 눈, 작은 코와 입을 지닌 대상을 어리고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고 보호하려는 반응을 보인다는 이론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9년 멜라니 글로커 등의 연구진은 아기 사진의 얼굴 비율을 조정해 베이비 스키마가 강한 얼굴과 약한 얼굴을 만든 뒤 참가자들의 반응을 살폈는데요. 참가자들은 머리와 이마가 크고 얼굴이 둥근 아기를 더 귀엽다고 평가했으며 돌보고 싶다는 의사도 더 강하게 나타냈죠. 2014년 연구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인간 아기뿐 아니라 강아지와 고양이의 얼굴에서도 확인됐고요. 대상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유아적인 비율을 지니면 비슷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우리가 끌리는 건 이처럼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당연한 반응’이라는 완벽한 핑계까지 생겼습니다.


(출처=유튜브 채널 넷플릭스 '동궁'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넷플릭스 '동궁' 캡처)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꺼먹살이는 눈빛과 몸짓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관객은 빈칸을 상상으로 채우는데요.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에서 호기심을, 구천에게 달라붙는 행동에서 외로움을, 그를 막아서는 장면에서 충성심을 읽는 식입니다. 여기에 인간을 먹잇감으로 보던 존재가 구천의 호의를 기억하고 스스로 그의 곁을 선택하는 과정이 더해지며 한껏 마음을 열게 하죠.

이처럼 귀여운 ‘비인간 조연’이 주연보다 더 화제를 모으는 일이 드물진 않은데요. 다만 인기의 방식은 다르죠. 크게 보면 장면을 훔치는 코믹 조연, 주인공과 정서적 관계를 맺는 조력자, 서사보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마스코트로 나뉩니다.

꺼먹살이에게 붙은 ‘조선 그루트’라는 별명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의 베이비 그루트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두 캐릭터 모두 작은 몸과 큰 눈, 제한된 의사소통으로 무거운 이야기 속에 웃음을 더하죠. ‘만달로리안’의 그로구도 강한 능력을 숨긴 작은 존재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말하지 못하고 보호받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딘 자린(주인공)을 구하며 둘은 가족에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는 귀여움과 기괴함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는데요. 처음에는 말없이 치히로를 따라다니는 외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탐욕을 흡수한 뒤 사람을 삼키는 괴물로 변합니다. 둘 다 선악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기 때문에 귀여운 마스코트가 되면서도 작품의 어두운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죠.


(출처=네이버 영화)
(출처=네이버 영화)


서사적으로 꺼먹살이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는 ‘해리 포터’의 도비인데요. 도비는 처음부터 해리에게 충성한 존재가 아니었죠. 해리를 보호한다며 오히려 여러 사고를 일으켰지만, 해리가 자유를 선물한 뒤 자신의 의지로 그를 돕고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내놓습니다.


(출처=네이버 영화)
(출처=네이버 영화)


비인간 조연이 도달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바로 미니언즈죠. ‘슈퍼배드’에서는 악당 그루의 계획을 돕는 이름 없는 부하들이었지만, 단순한 외형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예측할 수 있는 행동 규칙으로 빠르게 작품의 얼굴이 됐습니다. 결국, 단독 영화까지 제작되며 조연에서 독립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으로 올라섰죠.


(출처=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캡처)
(출처=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캡처)


시각적인 친화성까지 고려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더피와도 가깝습니다. 저승에서 온 초자연적인 호랑이지만 행동은 덩치 큰 집고양이와 같고, 말 대신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죠. 한국 민화의 ‘바보 호랑이’를 현대적으로 변형했다는 점도 구전설화에서 이름을 가져온 꺼먹살이와 통합니다.

꺼먹살이를 향한 애정은 화면 밖으로도 번지고 있는데요. 온라인에서는 “인형으로 만들어 달라”, “키링이 나오면 사고 싶다”, “이모티콘을 출시해 달라”는 반응이 이어졌고, 팬들이 직접 만든 캐릭터 이미지와 팬아트도 공유되고 있죠.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꺼먹살이의 분량만이 아닙니다. 작품이 끝난 뒤에도 이 작고 까만 귀매를 일상 가까이에 두고 싶은 건데요.

본편은 끝났지만 꺼먹살이는 화면 밖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까지 남긴 존재. 꺼먹살이가 노린 가장 확실한 성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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