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응급실은 마지막 문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첫 번째 문이어야 한다

입력 2026-07-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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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는 곳

▲고동완 윌스기념병원(수원) 응급의학과 센터장 (윌스기념병원)
▲고동완 윌스기념병원(수원) 응급의학과 센터장 (윌스기념병원)
응급실은 병원에서 생사를 가장 먼저 가르는 공간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가 예고 없이 문을 두드린다. 심정지와 중증외상, 뇌졸중과 심근경색, 고열로 경련하는 아이,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노인까지. 이들에게 응급실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응급실은 점점 '첫 번째 문'이 아니라 '마지막 문'이 되어가고 있다. 응급처치가 끝난 환자는 병실을 찾지 못해 응급실에 머물고, 새로운 중증환자는 빈자리를 기다린다. 응급실은 치료를 시작하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입원을 기다리는 대기실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역시 의료진이나 특정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병상 부족과 의료전달체계의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현상이다.

응급실의 원칙은 단순하다. 먼저 온 사람이 아니라 더 위급한 사람이 먼저 치료받는다. 응급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중증도 분류(Triage)가 이루어진다. 심정지, 중증외상,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패혈증, 기도폐쇄처럼 수분이 생사를 가르는 질환은 즉시 치료가 시작된다. 반면 감기나 오래된 통증, 경미한 상처처럼 응급성이 낮은 경우에는 대기가 불가피하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제한된 의료자원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응급의료의 기본 원칙이다.

그렇다고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환자와 보호자가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야간과 휴일에는 문을 연 의료기관을 찾기 어렵고, 혹시 큰 병이 아닐까 하는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다. 응급실 과밀화의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해답은 응급실 밖에 있다. 응급실 과밀화는 응급실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병•의원과 야간진료기관, 달빛어린이병원,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제 역할을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시민은 자신의 증상에 맞는 의료기관을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119와 응급의료상담을 통해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안내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경증환자는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신속히 치료받고, 중증 환자는 지체 없이 전문 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되는 체계가 자리 잡을 때 응급실 과밀화도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도 중요하다. 응급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가장 위급한 환자에게 가장 먼저 열려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 때 의료진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위중한 환자의 생명을 붙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는 결국 모두의 안전으로 돌아온다.

응급의료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감당해야 하는 과도한 법적 부담이다. 응급의료는 환자의 생사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분야다. 그럼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까지 형사처벌이나 과도한 민사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의료진을 위축시키고, 결국 고위험 응급진료와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의료인의 중대한 과실에는 엄정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최선의 진료를 다했음에도 결과만으로 과도한 법적 책임을 묻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적시에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국가의 책임이 중요하다. 응급의료는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될 수 없는 대표적인 공공의료다.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전문인력 확보, 권역별 이송체계 개선, 실시간 병상관리 시스템 구축은 물론, 응급의료의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인 의료분쟁 조정 체계와 법적 보호장치 마련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상급병원 역시 응급환자의 전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충분한 병상과 진료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응급실의 문제는 응급실 안에서만 해결되지 않는다. 병원 전체와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책임지고 풀어야 할 과제다.

응급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는 곳이다. 그 문이 병상 부족과 의료 공백으로 막혀서는 안 된다. 응급실은 마지막 문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첫 번째 문이어야 한다. 그 첫 번째 문을 지키는 일은 의료진만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와 의료기관, 그리고 시민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우리 사회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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