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투자 실패시 정치인 책임 못져
사회질서는 정부간섭 않는 게 최선

한국 축구팀이 2026월드컵 대회에서 32개 나라가 겨루는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다. 우수한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한국으로서는 몹시 아쉬운 결과였다.
한국 축구를 관장하는 대한축구협회(KFA)는 축구의 대중화로 국민의 건강증진, 건전한 여가 선용, 스포츠 정신 함양, 분야별 축구 영역의 균형 있는 육성과 발전을 도모하고, 우수 선수와 지도자 및 심판의 양성, 국제 경기를 통한 국위 선양 및 세계 축구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KFA 홈페이지).
축구협회는 이와 같은 구체적 목적을 위한 인위적 조직으로서 조직 질서(taxis)에 따라 운영되며 사회 전체의 질서 변화와 상호 작용하며 변화한다. 조직 질서란 축구협회가 목적 달성을 위해 그 구성과 운영 등에 관해 만든 내부 질서를 말한다.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기량과 전·후반 90분을 뛸 수 있는 체력, 이들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운영하는 감독의 작전 능력 등이 고루 요구된다. 감독은 이기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에 기반한 경기 질서를 만들고 선수들을 훈련하는 등 경기에 관한 전권을 가진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한국 축구팀이 보여준 경기 내용은 감독의 전략 및 전술적 무능과 무계획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판세를 읽고 경기를 풀어가는 중원의 관제사 이강인 선수가 볼을 넘겨줄 선수를 찾을 수 없던 모습은, 있어야 할 경기 질서인 팀워크의 부재나 붕괴를 보여준 것이었다. 지난 6월 3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과 불성실로 야기된 조직 질서의 붕괴는 치명적이다.
반면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거대 사회의 질서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창안하고 계획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사회 질서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질서(cosmos)로서, 조직 질서와는 달리 구체적 목적이 없고 추상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사회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 질서를 보호하는 데 있다. 이는 곧 위정자나 관료들이 사회 질서 운행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첫째, 가치와 선호 등이 서로 다른 각 개인에게는 각각의 목적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거대 사회에는 우리가 아는 것을 아는 것(known knowns)도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known unknowns)도 있지만,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이 엄청나게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실정은 두 질서가 그 형성과 운행 원리에 맞지 않게 왜곡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구체적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축구협회나 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조직은 경영진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얼룩지고, 대규모 경제를 비롯한 사회 질서는 소수의 위정자가 일천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성으로 계획하려는 오만으로 망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정권에 걸쳐 나온 부동산 정책은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제약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규제나 세금으로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재산세 인상, 다주택자 규제, 토지거래 허가제, 분양가 상한제 등은 수요자의 선호에 맞춰 공급이 이뤄지는 시장 질서를 파괴하여 집값을 올리고 주거 생활을 불안하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어리석은 정책을 또 되풀이하려는가?
기업은 상업 활동을 하는 조직이며 사회 질서와 상호 작용하며 변화한다. 따라서 반도체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비한 투자는 AI의 발달에 따른 사회 질서의 변화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조직 질서를 바꾸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맡겨야 한다. 반도체 제조 기술과 시장의 변화 전망, 후발 주자의 진입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정부의 개입은 사회 질서와 기업의 조직 질서를 모두 파괴한다. 지금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동원하여 추진하는 반도체 투자 계획이 그렇다. 또 투자가 실패할 때 기업은 돈으로 책임지지만 정치인은 책임질 방법이 없다. 고작해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인데, 실패의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에 남는다.
결국 인간이 만드는 인위적 조직이 효과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조직의 경영진이 유능하고 부지런해야 하며, 수많은 사람이 상호 작용하며 살아가는 거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 질서를 정부가 온전히 보호하고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불행히도 두 질서의 운행 방식이 서로 뒤바뀐 모습을 보인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사회가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