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쿼터협상, 새 통상과제 떠올라
경제안보 시대 규범·공급망 강화를

2026년 7월 1일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2011년 발효된 한·EU FTA는 그동안 상품 관세 철폐를 넘어 서비스·투자·지속가능발전 등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며 양국 경제협력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FTA 발효 이후 교역 규모는 발효 이전과 대비해 약 50% 이상 증가하여 2025년 상품 교역액은 역대 최대치인 1368억달러를 기록하였다. 양측의 상호간 누적투자도 2868억달러에 달하는 등 호혜적 협력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협정은 한국이 거대 선진 경제권과 맺은 가장 포괄적인 FTA 중 하나였다. 동시에 EU 입장에서도 아시아 국가와 체결한 첫 FTA였다. 출발점은 관세 철폐였지만, 성과는 관세 인하 효과를 넘어 더 넓은 영역에서 나타났다. EU는 한국의 3대, 한국은 EU의 8대 상품 교역 상대가 됐다. 2024년 EU의 대(對)한국과 한국의 대EU 직접투자액은 각각 530억 유로와 418억 유로에 달했다.
한·EU FTA의 의미는 단순히 교역과 투자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이 협정은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 방식을 바꿨다. 초기에는 완성품 수출 확대가 중심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투자와 생산 거점, 공급망 협력, 중간재 교역이 결합된 복합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한·EU FTA 이후 한국의 수출과 투자는 중·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크게 증가했고, 기업의 EU 진출 전략도 직접 수출 위주에서 현지 생산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다변화됐다.
물론 15년의 성적표가 모두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한·EU 교역의 변동성을 키웠다. 한국의 직접 수출이 일부 기간 정체된 것은 FTA 효과가 약했기 때문이라기보다, 한국 기업의 해외 생산 확대와 EU 역내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된 결과로 봐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양측은 완성품을 사고파는 관계만이 아니라, 전기차·배터리·반도체 장비·정밀화학·의료·디지털 서비스가 얽힌 산업 생태계의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최근 EU의 철강 관세율할당제도(TRQ) 개편은 한·EU 관계에 새로운 긴장 요인으로 떠올랐다. EU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 종료 이후 2026년 7월 1일부터 새로운 철강 수입 규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새 제도는 기존 무관세 수입 쿼터를 대폭 축소하고, 쿼터 초과분에는 50% 관세를 부과한다. 또한 철강이 실제 어느 나라에서 용해·주조됐는지를 확인하는 원산지 검증 요건도 강화된다.
한국으로서는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EU는 미국에 이어 한국 철강의 핵심 수출시장이다. 그리고 철강 수출은 우리 기업의 유럽 생산법인 운영과도 직접 연결돼 있다. 철강 쿼터는 유럽 내 한국 투자기업의 생산 안정성과 공급망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우리 정부가 EU 측에 한·EU FTA와 세계무역기수(WTO) 규범에 부합하는 제도 설계, 한국에 대한 특별한 고려, 한국 기업의 시장접근 최대화를 요청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협상 흐름은 일정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6월 10일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 이후 양측 당국 간 철강 쿼터 협상이 집중적으로 진행됐고 일부 성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구체적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국 측은 여타국 대비 우호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EU 측도 한국을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평가하면서 한국 측 요청을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는 한·EU 통상관계의 다음 15년을 준비해야 한다. 기존 FTA가 관세를 다뤘다면, 앞으로의 협력은 규범·표준·공급망·디지털·탄소 동맹 구축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한·EU FTA 15주년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철강 TRQ처럼 민감한 현안에서는 FTA 파트너십에 걸맞은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탄소·인증·표준 분야의 비관세장벽을 줄이는 상호인정 체계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셋째, 핵심광물·반도체·배터리·AI 등 전략산업에서 공급망, 공동투자, 기술협력 채널을 제도화해야 한다.
15년 전 발효된 한·EU FTA는 한국 통상정책의 지평을 넓힌 사건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지평을 다시 넓히는 일이다. 관세 철폐의 시대에는 시장을 여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안보의 시대에는 열린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같은 규범을 공유하는 파트너와 공급망의 신뢰를 쌓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그래야 한·EU 관계는 FTA 15년의 성과를 넘어 ‘전략경제 파트너십의 새로운 15년’이라는 출발선에 설 수 있다.



